간호사인 후배는 산부인과에 근무하면서 '여성의 출산'에 대해 회의하고 있었다. 허투루 대해지는 여자와 아기에게서 연민이 한창 고조될 때 우리는 만났다. 산부인과에 근무하면서 지금의 출산문화를 너무나 잘 아는 우리는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 십오 년 차 후배의 열정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좋은 병원을 마다하고 조산사 면허를 갖기 위해 1년간 수련을 하러 객지로 나갔다. 조산사가 된 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내게 찾아와서 자연출산의 벅찬 현장도 함께 했다. 아! 출산이 이런 거구나! 매일 혼자 무릎을 쳤던 나는 함께 감탄해 주는 친구의 응원에 힘이 났다. 나와의 출산경험을 뒤로하고 그녀는 다시 산부인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녀의 병상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출산 현장을 보며 날마다 심장을 집에 두고 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후배에게 아기가 생겼다. 그녀가 얼마나 아기를 기대하고 있는 지를 알고 있던 나는 아기가 생겼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 임신 초기엔 여느 어미들처럼 유산의 두려움을 느꼈고, 입덧도 하였다. 그렇지만 기특하게 제 주수에 맞게 자라는 아기를 보며 가슴 벅차했다. 태교의 중요성을 설파하러 다녔음에도 스스로에겐 잘하지 못하는 것에 스스로 실망감도 느꼈고 여전히 남편과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당기는 데로 먹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는 좋은 먹거리를 찾기도 했다. 열 달은, 흥분과 희망, 절망과 후회로 금세 지나갔다.
오래전, 나도 아이를 품고는 그녀와 거의 비슷한 임신기간을 지낸 것에 대해 한참을 지나 후회를 했었다. 그래서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행복하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하였다.
후배는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연출산이라고 다짐했다. 다니던 병원의 병원장에게 최대한 개입 없이 자연출산을 할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다. 혼자 진통해도 괜찮으니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도했다. 노산이라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예정일에 앞서 진통이 시작되었다. 스스로가 계획한 대로 진행이 되었다. 진통 중에도 남편을 밖에 나가있으라고 했다. 홀로 진통을 하며 후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가 바라던 대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때까지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막바지에 도움을 주러 들어갔다. 아기 머리가 보였다 말기를 삼십여분, 원장이 들어와 " 잘 참내. 어디 이제 아기를 낳아볼까? " 원장은 가위를 들고 회음절개를 하려 하는 것이 보여서 그 와중에 " 절개 안 할 거예요!!! 원장님! 그냥 낳아볼게요"라고 외쳤다. 주춤한 원장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고 절개 없이 건강한 아기를 만났다.
"선생님~~ 진통 때 입고 있던 가운이 왜 그리 무겁던지요~~ 진통에 몸을 온전히 맡긴 산모들이 훌훌 옷을 벗어던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회음 절개하려는 의사 선생님께 그 경황에도 안 하겠다고 이야기도 하고, 신생아실에 아기 안 가고 제 품에 두고 안고 있었어요. 아무런 의료적 처치 없이 잘 낳았답니다. ㅎㅎ 근데 진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 경험이었어요. 내 몸에서 딱 맞게 분비되는 호르몬이 있다고 생각하니 충분히 이렇게 할 가치가 있을 거라고 끝없이 되뇌었어요. 그랬더니 요렇게 이쁜 사람이 제게 왔네요!"
조산사로서 여자들의 출산을 이해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출산을 경험한 그녀는 진정한 조산사가 되었다. 출산이 여성에게 주는 "넘어섬"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그녀가 자랑스럽고 대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