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씨는 한 곳에서 이 년마다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잊힐라치면 또다시 임신소식으로 끈이 이어졌다. 가끔씩 그녀가 사는 곳 근처를 지나치며 개구쟁이 아들 셋을 떠올리곤 했다. 간직한 전화번호 덕분에 카카오톡에서 커가는 아이들 사진을 보는 즐거움은 마치 나의 손자들을 보는 듯 흐뭇하다. 아이들의 미소에, 포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앵글을 맞추었을 정은 씨와 남편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사진 찍는 엄마의 재롱? 덕에 아이들의 표정이 밝음을 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는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거다. 셋째 아들을 낳아 안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제는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종종 좋은 부모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다. 딸을 하나 더 낳으면 어떻겠냐는 말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아이를 원하지 않는 지금의 세상에서 셋씩이나 아이를 낳은 정은 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양심이 없는 건가! 제 속을 다 파내어 아이들을 기를 정은 씨 부부가 대견하고 짠하다. 잘 자랄 아이들도 슬쩍 기대가 된다. 나의 폰 속의 정은은 셋째를 가슴에 안고 감격해 글썽이는 모습으로 있다.
올봄, 정은 씨가 또다시 왔다. 넷째를 품었다.
딸일까? 아들이란다. 와! 아들 넷! 남편의 얼굴에 각오가 서려있다. 주신 생명이니 잘 품고 낳아 기르겠단다. 할 말이 없다. 세 아이 모두 잘 낳았으니 낳는 일은 걱정 없다. 뭐 사실할 말도 별로 없다. 음식과 운동을 좀 더 신경 쓰라는 조언에 붙여 한 가지 더, 마음을 돌보라는 말도 보탰다. 내가 할 일은 넷째를 잘 받아내는 일이다. 두 아이는 예정일에 맞추어 낮에 태어났다. 둘째만 체중이 커서 일주일 전에 서둘러 나왔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편안한 주말에 많이 태어난다. 예정일 즈음에 주말이 끼어 있어서 혹시나 아기를 만날까 기대를 했었는데 그냥 지나갔다.
정은 씨의 몸은 정확하다. 출산 예정일 이틀이 지나가는 새벽 두 시, 진통이 온다고 했다. 아들 셋을 돌봐줄 사람을 섭외하느라 다섯 시가 지나 아기를 낳으러 왔다. 60% 진행이 되었는데 아기는 아직 위에 있고 너무나 멀쩡해 보인다. 10분이 지나자 3분 간격의 강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산모의 안정감이 몸으로 나타난거다. 엎드려 진통을 견딘다. 다 된 느낌이 온다. 살짝씩 힘이 들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옆으로 눕혀 진찰을 하니 진통이 올 때마다 쑥쑥 내려온다. 딱 세 번의 진통으로 머리가 보였다. 힘주기 조절을 한다. 천천히, 천천히, 아기가 태어났다. 도착한 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았다.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정은 씨의 소식을 듣고 정성스레 목욕재계를 했다. 방정맞게 서둘지 않아야 한다. 발걸음도 평소보다 천천히 옮긴다. 가을비가 내리는 밤길은 조용하다. 이 시간에 밖으로 나다니는 직업은 흔치 않지만 내게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자동차 시동을 켜니 피아노 곡이 흐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흘러나온다. 아 천지가 이 아이의 탄생을 알아챘나 보다. 소름이 돋았다. 마음을 저 바닥까지 내려놓았다. 잘 태어날 거야, 암!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 사랑을 주며 살아갈 사람이지!
하필 하고 많은 날 중, 외부강의 날과 겹쳐진 정은 씨의 출산일은 드라마틱하게 내 스케줄에 맞춰졌다. 서두르다 그르칠 것을 알고 있듯 넷째 아들은 딱 그만큼 시간에 맞추어 태어났다. 많은 날들을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 딱 맞추어진 시간에 태어나는지, 아기를 받아낼 때마다 기가 막히고 신통하다. 보이지 않는 그 뭔가가 분명히 있다. 밤을 새워 말이 헛나올 것이 염려되었지만 강의는 순조롭게 끝이 났다. 새내기 간호학생들의 초롱한 눈빛과 넷째 녀석이 주는 긍정의 기운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튿날 배꼽에서 피가 나온다 하여 정은 씨 집을 방문했다. 별일은 아니지만 걱정할 일을 덜어주는 것 또한 나의 할 일이라서다.
깨끗이 배꼽을 정리하고 산후 자궁 수축도 확인했다. 훗배앓이는 아주 좋은 현상이니 즐겁게 생각하시라 했다. 가운데 두 녀석은 아직 유치원에 있고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만 집에 있다. 동생 아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겠다며 "새들의 왕"책을 가져왔다. 똘똘하게 잘 읽는다. 내가 키운 것 같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동생 셋을 거느린 형답게 의젓하다. 처음 만났던 부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천양지차 다른 부부가 되었다.
"두 줄이 나왔어요" 셋째가 생겼다는 선민 씨의 목소리 톤이 높다. 이보다 더 축하할 일이 있을까. 여물고 있는 이 가족의 셋째는 내년 푸른 오월에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