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첫아기를 낳은 경희 씨가 둘째 소식을 알려 왔다. 그녀는 둘째를 집에서 낳고 싶다고 했다. 첫째가 엄마의 출산을 보고 놀라면 어쩌냐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첫째를 잘 낳았으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남편도 아내를 지지했다.
달이 찼고, 예정일을 5일 앞둔 경희 씨에게 진통이 왔다. 대부분 밤에 아기가 태어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도착해 보니 아직 진통이 약했다. 천천히 집 안을 살폈다. 아기 낳을 때 누울 요의 방향, 화장실까지의 거리, 햇빛 차단 여부, 출산 시 필요한 기구의 위치를 점찍어 두었다. 경희 씨의 걸음걸이, 말투, 진통 간격과 세기 등도 살폈다. “잘하고 계십니다. 멋져요.” 경희 씨에게 칭찬과 격려를 건네는 동시에 아기를 받으며 애쓸 스스로도 위로했다.
‘동생이 태어난다’며 신난 첫째와 달리 시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 뒤 경희 씨의 진통이 세져 준비된 출산 방으로 들어갔다. 힘주는 소리가 들리고 진통이 대여섯 번 오간 후 아기가 태어났다. 건강한 사내 녀석이었다. 문틈으로 귀를 쫑긋했던 가족이 우르르 들어왔다.
남편과 첫째가 탯줄을 잘랐다. 시어머니는 재빠르게 미역국 한 사발과 갓 지은 쌀밥을 들고 들어왔다. “어서 먹어 봐. 그래야 젖도 잘 돌지!” 경희 씨가 미역국을 먹으려 일어난 사이, 아기가 큰 소리로 울었다. 경희 씨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젖을 물렸고 미역국은 밀려났다. 경희 씨의 눈길은 계속 갓난아기에게 머물렀다. 사랑의 시작, ‘응시’다. 임신 내내 젖을 차지한 첫째가 섭섭해하자 경희 씨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쪽 가슴을 내밀었다. 뒤편에 앉은 나는 눈물이 났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우리 모두는 이런 사랑 위에 살고 있다. 사랑받고 자란 이가 또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내어 준다. ‘사랑 도돌이’다.
경희 씨는 2년 뒤 같은 방식으로 셋째를 낳았다. 딸인 줄 알았는데 아들이었다. 그녀는 덤덤히 “아들 셋도 괜찮아요.” 했다. 또 다른 사랑둥이가 생겨났다. 내가 한 일이라곤 경희 씨를 쓰다듬으며 격려하고, 첫발 내디딘 아기를 그녀 가슴에 올려 준 일뿐이다. 그거면 족하다.
“아가야! 좋은 세상에 온 너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