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요?

가정출산.

by 김옥진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유럽에서 온 미나 씨는 연신 자신의 집이 좁다고 말한다. 보내온 집안 사진을 여기저기 짜깁기해서 칠판에 그려보니 뭐 그리 좁지도 않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이만하면 훌륭하다. 평생 아기 받으며 이보다 더 좁은 장소에서도 출산을 도왔다. 외려 좁은 공간이 자연스러운 아기 마지에 더 이로울 때가 많다. 방하나 달랑있는 오피스텔은 더욱더 좋다.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연립주택에 살고 있으니 미나 씨의 걱정은 기우다.

진통을 하는 이에게 따듯한 물은 생각보다 효과적이라 지난번 만남 때 수중 출산 여부를 물었다. 물론 그들은 대환영이었고 더하여 물 준비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한 설명이 더해졌다. 출산 준비를 위한 마지막 만남이 있는 오늘, 수중분만 풀을 놓을 자리, 놓는 방법 , 물 받을 호스, 설치 방법, 출산 바구니 등 갖가지 이야기로 두 어 시간이 지나간다. 그들이 한국말을 못 하고 나도 영어가 서투르니 이해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멋지게 수중 출산을 하도록 도울 거다.


북적이지 않는 조산원에 오늘 스케줄은 달랑 그네 들 만이라서 서두를 일이 없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온 큰 아이는 쭈뼛거림 없이 밝고 명랑하다. 초음파 속 태아도 신이 났는지 연신 춤을 추니 내 마음도 덩달아 날아오른다. 태어날 아기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선해서 사람을 일으켜 세워 살게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미나 씨의 순조로울 출산을 상상한다.

긍정적인 상상은 작은 기도이며 믿음을 굳건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조산원을 참으로 올드하고, 심하게는 무식한 장소라고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평생을 아기 받으며 생긴 경험의 결과다. 미나 씨처럼 아기를 자연스레 낳아 본 누군가는 의료적 개입 없이 아기를 낳는 것은 당연하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이라도 더 건강하게 품고 낳아 젖 먹여 키우는 것을 보는 것으로 나의 삶은 흡족하다.

미나 씨 남편이 벽에 쓰여있는 "natural way"라는 단어를 보며 아내에게 엄지 척을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한편이다. 진실은 구구절절 여러 말이 필요 없다는 인디언 속담을 떠올린다.


추석, 음력 8월 15일은 동그랗게 살찐 달을 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달이 둥그러지면 아기들이 태어나곤 하는데 올해도 거르지 않고 보름달과 함께 한 녀석이 올 것 같다. 미나 씨가 오늘 새벽 출산의 조짐을 알려 왔다. 아기는 사나흘 내에 더 둥그러질 보름달과 함께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 출산을 도울 물건들을 재차 확인하고 지도를 보고 길을 다시 외워둔다. 다들 명절로 부산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한 곳만 바라본다. 명절이 뭐 대수랴! 한 생명이 오는 날은 그 어떤 날보다 귀하다.


아침산책을 나간다. 출산 조짐을 보였던 미나 씨에게서는 밤새 소식이 없다.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 입구에 주렁주렁 종이들이 펄럭인다. 다가올 추석, 유치원 아이들이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쪽지들이다. 삐뚤빼뚤 써진 나름의 소원들은 나이에 걸맞다. '엄마, 동생 만들어주세요'라고 쓴 소원종이가 더욱 펄럭인다. 추석 달의 기운과 아이의 바람이 더하여 생길 아기는 남다를 거란 기대를 한다. 그 아이 친구가 꽤나 동생 자랑을 해서였을까! 동생이 생기는 형아는 많은 것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이가 생각하는 동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어떤 면에서는 동생을 받아들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갈 형제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며 오래갈 친구다. 자라면서 다투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서로가 주는 위안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되는 시절이 온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서로를 위해 좋다. 서로 부대끼며 생기는 갈등 해결 능력은 살아갈 원초적 힘을 키워준다. 아주 잠깐, 소원을 쓴 그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도록 내 마음을 더했다.


오늘 밤 미나 씨에게서 소식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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