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 해 구월 그믐 아기.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출산을 하러, 출산을 도우러, 세 곳서 사람들이 모인다. 02:30분! 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의 세상에 인간들이 부산을 떤다. 내가 일등이다.


이른 새벽을 달려온 산모는 40%의 진행이 되어 있음에도 느긋해 보인다. 아기도 엄마처럼 느긋이 태어날 것 같다.


최고의 둘라 테라피스트 김미정 선생님의 터치가 시작되었다. 산고를 겪고 있는 산모에게 따듯한 것들을 대어주고 이완 아로마를 이용해 자궁을 잡고 있는 근육들을 달랜다. 눈을 감아도 어디의 근육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잘 아는 고수 미정 선생님의 손길에 뱃속 아기가 준비되었다는 듯 꼬무락꼬무락 답한다. 근육이 풀어지면 함께 마음도 풀어진다. 덕분에 아기와 산모는 출산의 최상의 조건을 갖춘다.


이완을 위한 피아노 선율조차 거슬린다길래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고비고비 정점을 달리는 수축에 태아는 점점 골반안으로 들어간다. 쉬어가는 지점에 도달하니 이완이 된 몸과 한밤중 고됨의 콜라보는 진통을 거의 사라지게 했다.


진통 촉진을 위해 걷기를 추천했다. 부부는 두툼한 점퍼를 챙겨 입고 깜깜한 거리를 나섰다. 머뭇거림 없이 조언을 받아주는 그들에게 고마운 맘이 든다. 셋째 아기를, 40~50%의 진행된 상태에서 밖에 나가 걷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산모는 한 시간 걷고 들어오며 벽을 붙잡고 진통을 하고 있다. 강해졌다. 예상대로 자궁문은 60% 진행이 되며 아주 얇아져 있다. 지금부터는 아기는 KTX 속도로 내려올 것이다.


통증 경감을 위해 따듯한 물이 받아져 있는 수중분만 풀에 들어갔다. 제대로 걸린 진통으로 산모는 어쩔 줄 몰라하고 세어진 진통으로 따듯한 물의 효과도 모르겠다고 한다. 남편의 손이 산모의 손을 잡는다. 서로 맞잡은 손길에 갈등은 제로다. 부부로 살면서 지금처럼 진심의 순간이 몇 번이나 될까. 괜스레, 불쑥 감동이다. 바라보는 둘라와 조산사는 말없이 곁을 지킨다. 한 시간가량 물에서 진통을 하는데 잠시 또 소강기가 왔다. 졸려한다. 물 밖에선 산모가 진통 간간히 잠을 잘 수가 있기 때문에 다시 물 밖에서 견뎌보자고 했다. 진통 사이사이 산모는 잠을 잔다. 간간히 오는 큰 폭풍에 성큼성큼 내려오는 아기가 기특하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아기는 물 밖에서 태어났다.


소띠 해, 구월 그믐, 아침 여물을 먹을 시간에 태어난 녀석은 아마 평생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될 행운을 타고났으리라. 먹고 살려고 끔찍이 애쓰지 않아도 될 삶을 살기를 기원했다.


아기를 낳고 앉아서 젖을 먹이고 싶다는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만큼 산모는 아기를 품고서 체력을 준비한 결과다. 재난 같았던 둘째 마지에 이번에는 병원에 가서 낳자고 했던 남자의 얼굴은 활짝 펴져있다. 그의 두려움이 내게 전이되지 않도록 내 맘도 잘 챙겼다. 아기와 산모에게 주었던 곳추 세우는 응원의 말에 나도 바로 설 수 있었다. 역시 그들이 나를 살게 한다.


눈을 떠 정신을 차리고, 밤을 새워 아기를 받아냈다. 강보에 곱게 싸인 아기를 집으로 보낸다. 잘 살거라.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받은 기운은 하늘을 찌른다. 다음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 몸과 마음을 가운데 중심으로 놓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