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과 오월

살아가기

by 김옥진

오랜 시간 동안 스승의 날 언저리에 함께 근무했던 산부인과 선생님을 만나왔다. 열명 내외의 동료였던 사람들도 시간을 내어 각지에서 모인다. 시간은 거스를 수가 없음을 만날 때마다 느끼곤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창궐로 모임을 할 수가 없어 모두들 아쉬웠는데 드디어 팬데믹이 수그러든 오늘, 다시 모임을 한다. 같은 마음이셨는지 선생님 부부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 계셨다.

그 옛날 우리들 대부분은 눈물 콧물 흘리며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실력도, 마음가짐도 모두 갖춰야 아기를 받아내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조산사를 할 수 있던 것도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조산사 면허를 막 딴 스믈 세 살의 아가씨가 아기를 받는 모습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꾸중보다는 칭찬을 많이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해서가 아니라 기특해서 그랬을 것 같다. 한밤중, 응급수술을 마친 후 늘 병동을 한 바퀴 돌곤 하셨다. 누가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두 손엔 포장마차에서 사 오신 오뎅과 떡볶이, 참새구이가 종종 들려 있었다. 처음 먹어 본 참새구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에 새내기 조산사와 스텝들의 마음은 따듯해지곤 했다. 게다가 봉급이 줄어들지언정 인공유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고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산부인과에서 인공유산으로 벌어들이는 금전적 이득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액수라서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은 매우 큰 결단이 필요하다. 실력만이 살아가는데 최고가 아님을,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알려 주신 셈이다


벌써 몇 명의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서 왁자지껄하게 환영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였지만 인원이 다 찰 때까지 우리의 세리머니는 계속되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공감의 끄덕임과 눈 맞춤으로 웃음 주름살이 늘었을 거다. 퇴직 후 집에 계시는 선생님은 벌써 팔순이 넘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십 대 초반의 파릇한 청춘이었던 우리가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말해 뭐 하랴. 어언 사십 년간 오월의 만남에 서로가 감사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머리 희끗한 우리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코 끝이 찡하시다며 눈물을 거두려 애쓰시는 모습에 모두가 잠깐 동안 침을 삼켰다. 오래도록 스승으로 계셔주기를, 우리의 즐거운 만남이 초록의 오월에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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