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두 손을...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씩씩해 보이는 중국 여자는 한국말을 거의 못하면서도 당당하다. 타고 온 택시가 미터요금을 더 받으려고 빙빙 돌았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확인해 보니 고작 1킬로도 채 안 되는 곳을 헤맸는데 말이다. 택시기사가 자신을 한국말 못 하는 중국인이라 우습게 봤다고 소리를 지른다. 결재하려 내민 카드를 마구 들이대다 카드도 부러졌다. 점잖아 보이는 기사도 슬슬 부아가 나는 모양새다. 큰아이가 놀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분에 못 이겨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길거리 한 복판에서 씩씩댄다. 드디어 참다못한 기사 입에서 센소리가 난다. 손찌검을 하기 직전까지 간 두 사람을 떼어 놓느라 진땀을 뺐다. 뭐니 뭐니 해도 아기를 생각하면 화를 멈추는 것이 좋다. 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잰걸음으로 들어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문화도 다르니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다. 하지만 출산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외려 아기를 낳는 것이 여성 일생 중 일어날 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내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게도 느껴졌다.

첫아기 낳을 때 필요치 않는 약물 사용을 한 것과 아기를 떼어 놓은 것에 대해 또다시 흥분이 꺼내졌다. 그녀는 이번 둘째 아기를 약물 사용 없이 낳고 아기도 함께 있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혼자 아기를 낳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녀의 의견에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보통 사람의 상담 시간보다 세 배는 더 걸렸다. 택시 기사와의 실랑이를 또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아 20킬로 떨어진 그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불쌍히 여기는 듯한 호의에 자존감 다칠까 염려는 되었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함께 동행해 준 나랑 사는 남자가 서툰 중국어로 맞장구를 쳐주어서 돌아가는 길은 반대로 화기애애했다.


여전히 남편의 반대가 심해서 버티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남편에게서 출생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냐는 짧은 통화도 했다.

예의 없고 무시당하는 투의 언사에 언짢음이 몰려왔다. 자연주의 출산은 그 자체가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도 될까 말까 하다.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한 후에 출산을 도울지 여부를 고민해야 했다. 그럼에도 중국 산모는 무슨 배짱인지 나와 함께 아기를 낳을 것처럼 간간히 엉뚱한 질문을 해오곤 했다. 마음 한편엔 그래도 산모인데, 진통을 할 텐데, 태반이 나오면 자궁 수축을 봐줘야 하는데, 오만가지 상황들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춤을 추었다.

예정일은 다가오는데 열흘 넘도록 이렇다 할 예기가 없다. 남편이 계속 반대를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슬그머니 출산 예정 산모에서 그녀를 제외시키고 있었다.

사실 펙트는 이렇다. 남편이 아내의 출산방법과 출산 장소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산모의 아기를 받을 수 없다.


예정일을 이십 여일 남긴 날 밤 한 시, 출산 현장이 찍힌 사진 세 장이 날아왔다. 그녀는 결국 고집을 부리고 집에서 아기를 낳은 모양새다. 사진 속 아기는 떨어져 나온 태반에 연결되어 있고 이부자리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다. 다행히도 출혈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 잡동사니를 넣어둔다는 욕조로 수중 출산을 하겠다 하더니 정말로 그렇게 했다. 욕조 안에서 아기를 안은 모습은 초췌하니 표정이 없다. 아기는 다행스럽게도 똘똘하다. 아무런 의료적 개입 없는 건강한 산모의 출산은 사실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걸 반증한 셈이다. 남편과 함께 했는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지금 낳았으니 와서 도와달란 말 역시 없다. 그것은 나에게는 그 출산에서 일어나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궁금증이 동했지만 그녀에게선 더 이상 문자는 없었다. 8시간이 지난 이른 아침, 회음이 소변볼 때 아프고 태반이 떨어져 나오며 출혈을 했는지 조금 어지럽다고 문자가 왔다. 출생증명서를 받을 경우 얼마를 줘야 하는지도 물어왔다.

무슨 출생증명서? 그녀가 나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건 저렴하게 출생증명서를 받기 위함이었나? 조산원을, 조산사를 이렇듯 만만하게 보는 것에 대해 부아가 올라왔다. 정중하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1. 당신은 내게 임신 36주가 지나도록 남편의 반대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남편이 허락하는 것은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2. 진통이 시작되어 출산이 이뤄지는 과정을 함께 해야 그것을 증명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 진통의 과정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아기를 낳았다.


3. 이후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대답하기 곤란하다.


4. 당신이 바라는 데로 아기를 낳았으니 나머지 일은 병원을 이용하기 바란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병원을 가야 할 것이고 회음 봉합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아기와 산모에게 항생제가 투여될 것이며 무식하게 아기를 낳았다며 별난 눈초리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 출생증명서 발급이 가능할까? 자연스레 아기를 만나고 싶어 한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나머지 자질구레한 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그 자질구레한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

지.

그동안의 긴긴 시간과 노력이 가치가 있었기를...

태어난 아기가 어디에서건 행복하게 지내기를...

저절로 손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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