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은 예정일일 뿐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난 아기가 드디어 태어났다. 다행히도 두 명의 아이들을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은 쿨한 성품의 어미는 나보다 더 느긋했다. 호기롭게도 거의 매일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마침, 안부를 묻는 나의 전화를 받을 때에도 삼겹살을 먹고 있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삼겹살 경계경보'를 내렸겠지만 나 조차도 그녀의 산과력 경험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아기가 많이 커질까? 혹시 양수가 적어지면 어쩔까? 가끔은 별별 걱정을 하는 사람들과 같아지는 내가 한심하다고 자책을 하곤 했다.

밤하늘을 밝힌 슈퍼문이 기울기 시작하고 나의 걱정은 줄어든 슈퍼문과는 반대로 조금씩 커져만 갔다. 41주가 되는 오늘, 병원 진찰을 한번 다녀올 것을 조언했는데 다행히도 진통이 시작되었다. 불안을 조장하는 작금의 출산문화를 너무나 뻔히 알고 있는 그녀는 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며칠만 더 기다릴 작정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낮에 태어난 두 아이들과는 다르게 늦은 밤 시작된 진통으로 우리 모두는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한밤중에 태어날 듯 한 예상을 깨고 밝아온 태양과 함께 호랑이띠 공주는 따뜻한 물에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얼굴, 등, 엉덩이에 태지가 많이 있는 걸 보면 예정일이 아직 안 되었다는 증거다. 예정일이 틀렸다. 예정일이 지났어도 여유롭게 기다려도 될 일이었다. 조바심 내는 과학은 예상 밖의 결과에 할 말이 없고 책임지지도 않는다.

그녀의 결정이 백번 옳았다.



햇살이 여름 아침을 깨우지만 나의 눈꺼풀은 무겁다.

산모의 몸만큼 나의 몸도 초 긴장을 유지했던 터라 너덜너덜 흐느적거린다. 늦은 아침을 먹을까 그냥 잘까를 망설이다 남편이 끓여낸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잠시 정신이 맑아진다. 역시 토종의 힘이란! 밥 한 공기를 된장찌개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다. 잠깐씩 슬그머니 졸음이 몰러오는 순간에도 호박을 씹고 두부를 음미하고 감자를 뭉개 먹었다. 졸면서 느끼는 다양한 맛도 나름 괜찮았다.

밤샘을 하고 등을 바닥에 대면 몸은 더욱더 무거워져 땅으로 푹! 푹! 꺼진다. 사람들이 보이고, 산에도 갔다가, 날아가는 새들도 본다. 기차를 놓치고 돈이 없어 구걸을 하는 내가 보인다. 아 꿈나라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게슴츠레 눈을 뜨니 분홍 커튼이 있는 내 방 침대 위에 내가 있다.

밖은 아직 환하다.

일어나야지, 기분 좋게 남은 오늘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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