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과의 신뢰는 출산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

아기를 낳다. 자연주의 수중출산

by 김옥진

서로에 대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출산을 함께하는 사이는 더더욱 그렇다. 긴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이며 서로를 알아야 출산이 수월해진다. 믿음으로 쌓인 관계는 한치의 의혹이 없으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출산이라는 절정에 집중하게 한다. 긴 시간을 할애해서 준비시킨 첫아기의 자연출산은 그래서 더욱 고귀하고 값지다.

난산을 했건 순산을 했건 첫아기를 낳고 받아낸 서로의 경험은 참여한 모두에게 신뢰라는 선물을 남긴다. 첫아기를 낳은 후 둘째 아기부터는 그래서 여러모로 수월하다. 진통하는 산모의 곁을 지키고 쓰다듬으며, 위로를 하다 문득 내가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기를 받아내며 느끼는 감동은 아기를 낳는 이와 다르다.


먼 곳에 사는 산모에게서 출산 문의가 왔다. 아기 셋을 낳았고 이번이 네 번째 아기라고 했다. 대부분의 다산모들이 그렇듯 그녀도 위의 두 아이들은 병원에서 낳았고 셋째를 집에서 가까운 조산원에서 낳았다고 했다. 드디어 산모와 아기를 대하는 방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조산원의 출산을 셋째를 낳으며 경험했다.

아기를 낳아본 산모들은 어떻게 출산이 진행되는지를 감각으로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자연스러운 출산을 했거나 알아본 산모일수록 아기를 낳는다는 것에 작은 철학이 생기게 된다. 그저 출산은 자연스러운 여성 생의 일부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로 그런 느낌이 다가왔다. 둘을 낳아 키운 나보다 더 고수일 거란 부러움도 꺼내졌다. 농사를 짓는 남편과 강원도 오지에서 사는 그녀의 출산에 참여한다는 일이 보람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꼭 그녀의 넷째 아길 받아주고 싶어졌다. 그냥 아직 만나지도 않았고 내가 받은 아기가 한 명도 없었지만 아기 셋을 낳고 키운 것만으로 그녀에게 믿음이 갔다. 전화를 끊고 처음 만날 아기와 그녀를 위해 화살기도를 날렸다. 이번 달 중순경에 서로의 거리 중간지점에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아기들은 정말 신비해요. 바란 데로 다 이루어진 걸 보면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보슬비 내리는 예정일에 만나자던 첫 아이는 정말 그렇게 태어났고요. 이번 아기도 말했던 소망대로 태어났네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잘 한일 같아요"

아기를 받는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첫아기를 맞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었다. 너무도 마른 그녀를 만난 첫날, 근력 없는 그녀의 출산이 고될 것이라는 예감이 앞섰다. 그러나 스스로의 각오가 남달랐던 그녀는 임신 25주부터 근력 키우기와 음식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산모들에게도 똑같은 준비를 시키곤 하지만 저질체력인 산모에게만은 특단의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녀가 날마다 문자로 보내오는 '열심'에 나의 걱정의 무게는 날로 가벼워졌다. 보슬비 오는 출산 예정일 새벽, 밤새 집에서 진통을 견딘 그녀는 진통이 너무 강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며 상황을 알려왔다.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다기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리러 갔다. 60%가 진행되어 있었다.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다. 뒷좌석에 이부자리를 깔고 엎드리게 했다. 덜컹거리지 않게 평평한 도로를 골라가며 살살 운전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두 시간 후 80% 진행이 되었는데 그 후부터는 아기가 잘 내려오지 않았다. 중간 골반과 바깥 골반이 엄청 좁았던 거다. 촛침이 고르게 돌아가며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고된 시간을 두 생명이 잘 견디고 있었다. 매실청을 먹이며 기운을 북돋았고 늘어지는 진통에 간간히 잠도 재웠다. 아기만 견디면 되었다. 엄마는 그간 가꾼 몸과 마음으로 충분히 버틸 저력을 키웠으니까. 그로부터 네 시간이 흘러서야 3킬로의 아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밤을 새우고 아침과 점심을 지나 오후 네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친 자궁은 선혈을 토해냈고 나는 쪼그라진 심장을 부여잡고 자궁수축제 주사를 놓았다. 약기운에 지친 자궁은 기운을 차려 쏟아내는 피를 멈추었다. 사진이고 뭐고 없다. 모두들 털썩 주져 앉아 깊은 심호흡을 했다. 피곤했지만 모두들 행복해했다.

둘째를 품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8개월이 돼서야 첫 만남을 가졌다. 첫아기의 출산으로 생긴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조금 껄끄러웠던 점은 체중이 생각보다 좀 더 늘어난 것, 주 수 보다 통통한 아기, 운동 후 물 대신 들이켰던 아이스티였다. 다시 남은 기간 동안 준비를 해야 했다. 첫아기 준비시키듯 날마다 만보계 사진과 음식조절 문자를 체크했다.


보슬비가 내려 폭염이 가라앉은 예정일 하루 전 날 새벽, 예상대로 진통이 시작되었다.

따듯한 물을 받기 전 둘라의 손길로 행복하게 진통을 견디는 그녀는 제법 느긋했다. 아직 잠들어 있는 큰아이를 돌보러 남편은 아내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사이의 신뢰는 이미 큰 산 같았다. 순조롭게 아기는 제길을 찾아 내려오고 있다. 적당한 온도의 물은 막판 그녀의 진통을 경감시킬 것이다.

양막이 자연스레 터지고 샘물 같은 양수가 흘러내리자 본격적인 강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물을 만날 시간이다. 따듯하고 편안한 물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지만 지금부터는 힘을 써야 할 때, 진통이 오자 금세 아기의 머리가 밖에서 만져졌다. 진통이 오가며 점점 더 많이 아기의 머리가 만져졌다. 호흡을 조절해야 회음의 찢어짐을 방지할 수 있다. 리드하는 말에 잘도 따른다. 조금, 조금, 조금만 더... 아기의 얼굴이 물속으로 나오고 찰나에 몸이 연이어 나왔다. 엎드려있던 그녀는 눈을 뜬 아기를 물속에서 건져 앉았다. 어안이 벙벙한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함박 웃는 그녀는 갑자기 수다쟁이로 변했다. 두 생명이 모두건강하다. 얼른 몇 장의 사진을 남편에게 보냈다. '감사합니다 정말!' 서둘러 큰 아이를 데리고 오는 그의 마음이 짧은 인사에 모두 담겼다. 서로의 믿음이 이룬 출산 판타지! 흐뭇하고 감사했다.


말한 데로, 생각한 데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두 번이나 한 그녀와 서로의 신뢰가 준 출산 판타지,

믿음은 그 이상의 결과를 만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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