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가톨릭 대학교 간호학과 일 학년 교양 옴니버스 수업에 특강을 한 지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늘 같은 주제인 '조산사의 소명'이라는 주제는 일 년에 한 번씩 나의 일에 대해 되새김을 하게 한다. '소명'이 바뀔 일은 없지만 나는 바뀌고 있기에 같은 강의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년에 새로 만든 ppt를 그대로 사용하고 추가로 다른 이야기를 넣었다. 2013년도에 방영된 OBS의 '다큐 탄생의 봄날'을 편집해서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모습도 넣었다. 조금 젊은 시절의 나는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아기를 받는다. 수 없이 돌려 보았던 다큐였지만 아기를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또다시 흐뭇했다. 그래, 그렇지, 저렇게 행복한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거야, 저렇게 아기를 낳아야 하지. 움직일 수 있는 한 난 저 일을 계속할 거야
다시 다짐을 한다.
새로 지은 간호대학 건물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덩치로 나를 압도했다. 일층에 있는 편의 시설은 마치 호텔 로비처럼 널찍하고 화려해 보인다.
재깔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풋풋한 기운이 사방에서 나를 부추긴다. 잘해야지.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이다. 빈 강의실에 들어가 심호흡으로 마음 준비를 했다.
돌이켜보니 이 삼 년마다 조교도 바뀌고 교수님들도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나만 그대로니 기분이 묘하다.
가르치는 것이 업이 아니어서 특별히 강의 의뢰가 오면 솔직히 부담스럽다. 반면 오랜만에 강의 준비로 살찌워지는 나를 만나는 것은 즐겁기도 하다.
팽팽한 활시위처럼 튕겨나갈 수 있는 정열은 점점 작아지지만 아기를 받아내며 쌓은 내공은 곰삭아서 구수하다는 것을 안다. 식어지는 정열이 일 년에 한 번하는 강의로 인해 또다시 팽팽해지는 활시위를 만난다.
그랬지,
내가 그랬지,
이 책엔 이런 것들이 있었어.
그리고 난 그것들을 실천했지.
얘들아 아기는 이렇게 낳는 거야.
너희들도 꼭 기억하렴. 출산에 외부의 개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멋진 일을 약물에 취해서 할 수는 없지. 훌륭하고 건강한 몸은 충분히 아기를 낳을 수 있어.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출산은 너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게 한단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90여 명의 학생들이 큰 강의실에 앉아있다. 나이 먹어 좋은 점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다는 것이다. 작은 서너 번의 숨만 있으면 충분하다.
조교가 두 명씩 출석을 부르고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대답을 한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하고 이쁘다. 얼마나 정성 들여 지워낸 자식들인가. 소중하게 품고 기른 부모님들에게 감사하다.
나의 강의가 얼마나 학생들 뇌리에 자리 잡을까.
졸업을 하고 최소 임상에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한 번쯤 떠올려지지 않을까. 정말 소망한다. 그렇게 되기를...
지난 몇 년간은 우리 조산원으로 학생들이 실습을 나왔었다. 9to5에 태어나는 아기들이 드문 관계로 24시간 대기를 하다가 출산이 있을 때 학생들이 오곤 했다. 출산이 끝나는 시간은 거의 인간들이 잠을 자는 한밤중이기 일쑤였다. 출산을 함께했던 학생들을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고 미역국을 먹여 보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은 엄마와 같은 마음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럽다. 학생들이 출산을 참관한 후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으로 고됨은 지차다.
산모 개개인에게도 미리 허락을 받아놓고 원치 않는 경우는 배제시켰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산모들은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나름 자기 주도적 출산을 하는 여성들은 의료적 개입이 없는 자연스러운 출산이 많아져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을 하는 부류여 서다. 운 좋은 학생들은 탄생의 공간에서 책에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따듯함을 한 아름씩 가슴에 안고 돌아갔다.
개중에는 결혼하면 꼭 아기를 낳으러 오겠다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아기를 품고 와서 행복한 출산을 한 학생도 있었다.
특강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간을 딱 맞추어야 명강의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곤 했다. 어찌하다가 딱 시간이 맞아떨어져서 질문도 받지 못하고 강의를 마쳤다.
정말로 순식간에 학생들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고요가 찾아온 강의실, 묘한 여운에 나 홀로 강의실 한 바퀴를 소걸음으로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