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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Nov 09. 2023

돌봄 요정의 쌍화탕 사랑

어설픈 전원생활

홍천 시골집에 함께 있던 동생이 몸살이 났다. 힘이 드는지 평생 낮잠을 안 자는 사람이 낮잠을 잔다. 독감주사도 맞았다는데 다 소용이 없나 보다. 연 이틀을 동해안에서 차박을 했다고 했다. 좀 썰렁하게 느꼈었다나. 감기의 원인은 분명히 있었다.

평생 선생님 하느라 방학 때 빼고는 계절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며 평일에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얼마나 감격스러워하던지. 그는 이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이번에  몸살이 온 이유는 차 박 캠핑 할 때 가을의 찬 바다 바람을 제대로 맞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저 누구던 아프다고 하면 내 안의 돌봄 요정이 잠에서 깨어난다. 본업을 수행할 기회가 온 거다. 약장에 있는 쌍화탕을 데워 먹이고 감기약을 먹었는지도 확인했다. 전기장판을 틀어 온기를 더하고 따끈한 보리차도 머리맡에 놓아 주었다.

수시로 머리를 만져 보고 열을 확인했다.


한 개 밖에 남지 않은 쌍화탕도 충분히 보충해 놓아야 한다. 시골이라 약국도, 가게도 문을 닫았을까 조바심이 났다. 가을의 밤은 빠르게 들판을 점령한다. 비장의 무기인 용감함을 꺼내 깜깜한  들판을 가로질렀다.


다행히도 농협 슈퍼엔 쌍화탕이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눈도 커지고 목소리도 올라갔다." 어머나, 농협에도 쌍화탕을 파는군요. 없으면 어쩌나 혹시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별걱정을 다하고 왔네요. 동생이 감기가 지독하게 걸렸거든요. 어쩜, 너무 고맙네요"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점원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왜 이리도 멋져 보이던지. 진심 그런 맘이 들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모두는 살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나도 감기 예방 차원에서 쌍화탕을 한 병씩 들이켰다. 무슨 귀한 보약이나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잡고서.

아프면 나만 손해다. 건강을 유지하고 챙기는 것은 나만을 위하는 일이 아닌 게다. 끙끙거리며 일어난 동생도 따끈한 쌍화탕을 한 병 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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