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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Nov 26. 2023

겨울아침

어설픈 전원생활

참새 소리에 잠이 깬다. 시골의 아침은 참새들의 지저귐 때문에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나의 방 바로 앞에 있는 대추나무는 참새들의 아침조회 장소다.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는 참새의 무게에 겨워 휘청거린다. 잠이 덜 깬 나도 대추나무처럼 비틀비틀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 눈을 비비며 참새를 센다. 잠깐 사이, 녀석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에잇! 잠이 확 달아났다. 오십 마리는 됐으려나?

먹을 것이 많은 늦가을의 들판엔 벼 이삭을 찾는 참새들로 북새통이다. 몇 십 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며 함께 나누어 먹는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참새들도 브런치를 즐기는 여자들처럼 할 이야기가 많나 보다.

참새들은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 살을 찌운다. 폭신한 갈색 털 뭉치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추운 겨울 동안에는 무얼 먹고살까?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하늘을 쳐다볼 사이 없이 내달린 많은 시간 속의 겨울 하늘도 오늘 같았을 것이다. 올겨울엔 파란 하늘과 참새들의 날갯짓을 더 많이 보리라. 새 먹이통에도 매일 곡식들을 채워 넣어볼 것이다.


서리가 온 세상을 덮었다. 서리가 내린 날의 하늘은 구름 없이 푸르다고 엄마가 말했다. 나도 딸들에게 간간이 서리 이야기를 전한다. 겨울의 날씨를 점치는 서리 이야기를. "오늘은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거야. 눈이 온 것처럼 서리가 내렸거든. 제법 추울 테니 옷 단단히 입고 나가야 된다." 내 목소리에 엄마의 마음이 대물림된다.

황량한 겨울의 텃밭에 남아 있던 초록 시금치가 차가운 서리 때문에 풀이 죽었다. 밭 한편에 품위를 유지하던 초록의 시금치는 강원도의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바닷가 해풍을 맞고 자란다는 시금치이니 여기서도 더 오래 살아 있기를 바란다. 풀이 죽긴 했어도 건질 수 있는 시금치로 초록 반찬을 꿈꾼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한 끼씩 구역을 정해 본다. 요만큼은 나물로, 또 요만큼은 된장국으로.

당분간 초록을 더 보고 싶다. 따듯하라고, 더 오래 살라고 검은 보온 덮개를 덮어주었다. 겨울이 되어서야 초록의 진가가 보인다. 흐드러지게 자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시금치는 왜 때가 지나서야 아쉽고 조바심이 드는 걸까? 그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시간이 흐르고서야 보이는 아이러니가 인생인 것일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걸 늘 말하고 있는 자연. 지금의 나에게 '때'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겨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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