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동이 트려면 삼십 분이나 남았다. 멀리 길가의 신호등 언저리로 한 대의 차가 부지런히 아침을 가른다. 밤사이 정체된 꿉꿉한 공기를 바꾸려 사방의 창과 문을 열었지만 아직 바람은 잠을 자고 있는지 어슴푸레 보이는 나뭇잎들은 꼼짝 않고 그림처럼 서 있다. 아주 잠깐 동안 며칠 전 폭풍을 그리워했다. 매서운 바람과 물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만으로도 후련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했던 걱정은 꺼내지지 않고 그저 시원한 물줄기만 떠올랐다. 제 입맛대로 사는 인간의 속성을 나도 가지고 있다. 입추는 서서히 찬바람을 밤마다 실어 나른다. 한 줄기 선선한 새벽 공기가 살갗을 간지럽힌다. 밤새 울어댄 풀벌레 소리는 그치고 새소리가 들린다. 아침이 오는 소리다. 참새일까? 제비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자주 하니 머리가 가볍다. 쓸데 있는 생각만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나이를 먹는 것, 몸이 둔해지는 것, 모두 다 신선하다.
그 사이 날이 훤히 밝아졌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늙은 정글의 왕자처럼 생긴 뻔뻔이 고양이가 느긋한 걸음으로 데크로 들어온다. 녀석은 배가 고파도, 대장 위치를 지키느라 전투를 치르고는 상처투성이로 돌아와도 발걸음은 늘 위풍당당하다. 다가가 살피니 그동안 굶었는지 더 야위었다. 이름을 부르면 벌러덩 누워 애교를 부렸던 녀석은 그럴 기력이 없어 보인다. 요사이엔 이빨도 빠졌는지 사료를 잘 못 먹는 것 같았는데 왠지 오늘은 게눈 감추듯 먹고 금세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동네 고양이 중 으뜸인 것이 건장한 고양이조차 뻔뻔이가 나타나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다는 것이다. 나는 뻔뻔이에 대한 의리를 지킬 것이라 결심했다.
뻔뻔이의 노쇠한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한 후 우리 가족은 뻔바이든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했다. 살 빠진 뒷모습이 꼭 그이를 닮아서다. 한 나리를 대표하는 이의 이름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쓸데없는 것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우리에겐 '뻔 바이든'이란 단어로 한껏 웃음을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