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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ug 25. 2024

화살나무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어설픈 전원생활

아직도 한낮엔 땀이 줄줄 흐르는데 화살나무 꼭대기에 첫가을이 내려앉았다. 수줍은 분홍 단풍이 하늘 끝에 닿아 계절을 재촉한다.

시간은 바람 사이사이에 계절을 숨기고 제 몸 불사르며 내지르는 매미소리엔 아쉬움이 가득 담겼다. 한 달 가까이 폭염으로 고생스럽다고 난리를 치지만 모르는 사이 우리 곁으로 가을이 왔다. 개구리 소리는 오간데 없고 저녁마다 귀뚜라미들이 합창을 한다. 가을비가 처마에 떨어지면 풀벌레들은 비를 피하느라 조용하다가 비가 그칠라치면 어느새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깜깜해도 창밖의 풍경을 그릴 수 있다. 계절이 바뀐다. 


보름 늦게 심은 옥수수가 비실비실하다. 괜찮다를 연발하며 위로를 하곤 지만 놓쳐진 보름간의 시간은 모두 때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쫄깃한 옥수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올해 찰옥수수 이모작은 실패다. 모두 이별을 고하고  그곳에 가을무를 심기로 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8월 중순은 어머니 기일이다. 해마다 기일이 지난 다음날 김장 배추를 심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인한 폭염으로 배추가 타 죽었다는 이웃 농부의 끌탕을 듣고서 김장 배추 심기는 열흘 뒤로 미루기로 했다.


까만 비닐멀칭에 잎사귀가 닿아 여린 배추 모종이 탈까 봐 멀칭을 모두 벗기고 모종을 심었다. 비닐에 가려져 숨 못 쉬던 땅이 나타났다.덩달아 내 숨도 편안해졌다. 열심히 간격을 맞춰 구멍을 파고 모종을 하나씩 넣으면 뒤따라오는 남편이 흙을 덮었다. 일은 한 시간이 채 되기 전에 끝났지만 허리며 팔다리가 꼭 체력장을 하고 난 뒤처럼 근육통이 왔다.


배추를 심고 난 다음날, 하루 동안 뒹굴거렸다. 시골살이에서 뒹글거린다는 의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잔잔한 근육들을 사용해야만 한다. 선선한 아침저녁으로 배추들을 살피고 태풍에 쓰러진 금잔화를 뽑아 정리했다. 꽃밭 길을 뒤덮고 거목이 된 봉선화 몇 그루도, 바람에 가지가 부러진 분꽃 가지도, 미련 없이 치웠다. 커피를 마시며 정리된 꽃길을 걷다 보면  무성한 수풀을 또다시 눈에 들어온다. 쪼그리고 앉아 강한 생명럭을 뽐내는 갖가지 풀들과 씨름을 한다. 시골 생활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큰 근육 쓰는 일만 안 했지 결국 움직여야만 한다. 마구 자라난 꽃들로 길이 사라진 꽃밭이 다시 훤해졌다. SNS에 근사하게 보이는 꽃밭들은 날마다 정리를 하는 사람 손길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틑날, 동생부부가 들어왔다. 나보다 농사 고수인 동생은 칭찬은 커녕 멀칭벗겨진 맨 땅에서 마구 자라는 풀은 어쩔꺼냐며 잔소리를 했다. 맨땅의 무시무시한 풀공격을 누나는 모른다나. 어찌 잔소리가 심하던지 남편과 나는 다음날 일찍일어나 다시 한 조가 되어 찟어진 비닐 멀칭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꼭 수술을 한 후 가지런히 피부를 꿰맨듯 보였다. 그러나 잔소리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테이프는 햇빛을 밭으면 금새 떨어져서 무용지물이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죄다 떨어질꺼라며 또 다시 끌탕이다. 그러면서 모종옆 비닐 멀칭위를 흙으로 덮어줘야 한다고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잎사귀가 흙에 닿을경우 최소한 타죽는것은 막을 수 있단다. 또 다음 날, 알려준데로 모종옆에 흙을 덮었다. 삽질 예순번은 60개 모종 심는것보다 열배는 더 힘들었다.


배추 모종을 심고 나서 태풍과 함께 온 비구름이 간간이 비를 뿌려주었다. 어떤 모종이던 심고 나면 열심히 물을 주어야 뿌리가 내리는데 올해 김장 배추는 하늘이 도왔다. 비 맞은 배추 모종들이 두 팔 벌린 아이들의 팔처럼 하늘로 향했다. 비가 오기를 바란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마치 하늘이 나를 도와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가능하다는 선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두 곱 이상 애를 썼으니 더 맛있는 배추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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