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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끄적

그루터기가 될테야

시끄적

by 김옥진

새싹이었어 나는

빗방울 하나에도 온몸이 떨렸지.

살랑이는 바람에

봉오리가 부풀고

햇살을 향해 난 만개했지

그리 길진 않았어.

그 환희와 격정은.

떨어져 나뒹굴어도 황홀했지.

잊을 수 없는 짧은 순간을 지금도 기억해.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지 않은 계절은

알아채기도 전에 또 다른 계절을 맞이했지.

수없이 수없이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지나가

나는 이제 그루터기가 되었지.

환희와 격정은 사라졌지만 천천히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누구에게나 손 내밀며 자리를 내어주지.

가끔은 울부짖어도 좋아.

많이 많이 자랑해도 좋아.

그저 조용히 앉았다만 간다 해도 좋아.

그래,

너무 슬퍼하지도 마.

다 지나갈 거야.

너무 무서워하지도 마,

누군가가 네게 손을 내밀 테니까.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그루터기에 앉아도 돼.

너를 위해 비워둔 자리를 기억하렴.

모두를 따듯이 안아 주고 싶어.

이제 난,

누구나 쉴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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