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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레깅스

그냥 쓴다. 일상

by 김옥진

좋아하는 레깅스에 자꾸 구멍이 난다. 이미 구멍이 난 여기저기를 꿰매고 입는데도 또 구멍이 생기려 한다. 알뜰해서도, 환경을 생각해서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난 이 옷이 편하다.


내가 이 레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우선은 나의 짧은 다리에 딱 맞는 기장감이다.

내 다리 길이에 딱 맞는 레깅스를 사보려 온갖 쇼핑몰의 레깅스를 사서 입어보았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했다. 세상 여자들의 다리가 언제부터 나보다 길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 레깅스를 입고 방바닥에 끌리는 광경을 보는 건 매번 비참하다.

맞춘 것 같은 이 낡은 레깅스를 입을 때마다 빛이 바래져서 글씨가 다 지워진 회사 로고를 들여다보며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내곤 했다.'어느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많이 파세요~혹은 부자 되세요~'라고. 알아내기를 포기했다.


두 번째로는 부드러운 촉감이다. 피부가 선천적으로 약해서 면이 아닌 옷을 입으면 몸에 뱀을 두르고 다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이 레깅스는 입는 순간 내 몸과 하나가 된다. 피부를 숨 쉬게 한다. 다른 화학섬유가 몸을 감싸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순간 산소가 모자라서 숨이 막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모임에 나가면 형형색색의 네일아트를 하고 온 친구들이 자꾸만 머리에 손을 대는 포즈를 취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손톱을 포함한 예민한 피부 덕분에 기상천외한 네일아트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몸에 딱 붙는 화학섬유로 만든 레깅스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로는 허리 고무줄의 조임이 부드럽다. 폭이 넓은 허리 고무줄은 마치 내장을 동여매는 고문 도구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점점 손이 가지 않게 되고 또다시 나는 여러 가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레깅스 쇼핑을 한다. 이것처럼 허리가 편안한 레깅스를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네 번째로는 내가 좋아하는 짙은 회색이라는 거다.

바지 안에 내복처럼 입어도 되고 치마를 이게 될 때는 스타킹으로 사용해도 상관없다. 두루두루 그렇게 즐겨 입었으니 구멍이 날 만도 한 것 인정한다. 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무리 제조 회사를 찾으려고 노력해 봐도 찾을 수 없다.

이대로 영영 떠나보내야만 하는 걸까.


무릎에 구멍 네 개가 더 생겨 버렸다. 다시 꿰매 입어야 할까 더 이상 궁상떨지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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