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항암 열흘 차, 어두운 터널 끝에 한줄기 빛이 보인다. 드디어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랐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건 몸이 보내는 회복의 신호다. 지난 열흘 동안은 마지못해 먹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 안 먹거나 못 먹는 것은 악화를 의미한다. 때마침 먹고 싶은 것이 생기니 기운이 난다. 마치 난생처음으로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른 것만 같다. "된장 무청시래기 찜"이다.
항암주사의 부작용으로 점막들이 약해졌다. 입안도 뜨거운 것에 한 꺼풀 데인 듯이 껄끄럽다. 외할아버지가 즐기시던 씀바귀나물처럼 입안이 쓰다. 밥 한 공기를 게눈 감추듯 먹었던 때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한창때는 주문한 음식이 참 적다고 느꼈다. 수저를 들기 전부터 식탁 위의 일 인분이 성에 차지 않았다.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1/3만 먹어도 양이 찬다. 사람들이 찌개와 공깃밥 한 그릇을 모두 먹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양이 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력을 회복하는 음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기력을 회복하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 만큼 힘차지 않다. 여자들이 병에 걸리면 발생되는 문제점이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음식은 무청 시래기 된장 찜이다. 맛의 기억도, 만드는 과정도 모두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다. 하는 수없이 알고 있던 조리법을 깨워 내 손으로 만들어 먹기로 한다. 먹고 싶은 욕구가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 또한 기력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연 추억과 함께 기억되는 섬세한 맛을 꺼낼 수 있을까. 그러기까지 혓바닥 돌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먹고 싶다고 무턱대고 만들어 놓고 옛날의 맛이 나지 않는다면 헛수고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몸이 허해지니 어머니의 손맛이 사무치게 그립다. 먹고 싶다고 조르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한 상을 차려주셨을 텐데. 언니라도 있었더라면 어머니의 맛을 재현해 주었을 텐데. 홀홀 외동딸은 가끔 있지도 않은 언니를 꿈꾸곤 한다.
하루 종일 무청 시래기 된장 찜이 마음에서 웅성거린다. 우습게도 무거운 몸은 벌써 냉동고에서 시래기 더미를 꺼내 놓았다. 꽁꽁 얼어 무청인지 배춧잎인지 분간이 안되던 덩어리가 녹기 시작한다. 진 녹색의 잎사귀가 누런 줄기와 함께 본연의 색을 내뿜는다. 맞다. 무청이다. 작년, 가을걷이를 하며 큰 솥에 한번 데친 무청이다. 일일이 껍질을 까서 한 끼씩 먹을 만큼 소분했다. 드디어 일 년이 지난 지금 빛을 본다. 몸에 좋다는 슬로푸드는 수많은 사람의 손과 시간을 품고서야 만들어진다. 이만한 재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뿔싸, 어쩔까! 된장이 바닥이다. 싹싹 긁어 보았지만 간도 맞출 수가 없을 정도로 양이 적다. 인스턴트 된장으로는 기억 속의 된장 찜을 만들 수 없다. 어쩔까 고민하며 어영부영 또다시 반나절이 지나간다. 불현듯 된장을 대체할 재료가 떠올라 무릎을 친다. 바로 추젓이다. 소화도 잘 되고 면역력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새우젓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어머니도 된장 대신 새우젓을 넣은 시래기찜 요리를 종종 해주셨다.
일사천리로 간잽이를 된장에서 새우젓으로 바꾼다. 간 마늘 듬뿍, 들기름 넉넉히, 들깻가루 푸짐하게 넣고서는 손이 저리도록 주무른다. 맛을 좌우하게 될 추젓 한 수저는 필수다. 열심히 치댄 덕에 무청에 적당히 간이 배었다.
한소끔 볶은 후 쌀뜨물 한 컵을 넣고 낮은 불로 자작하게 졸인다. 새우젓과 어우러진 갖은양념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찬다. 입에서는 얼른 들어오라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무청이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약불에 고아야 제맛이 난다. 원하는 맛 속에는 인내의 양념도 한몫을 한다. 밤을 지내며 뜸도 들이고 또다시 화끈하게 데워야 먹고 싶은 새우젓 무청 찜이 완성된다.
내일은 항암 11일 차, 보통의 과정으로는 부작용이 거의 사라져 일상생활하기가 수월해지는 시기다.
아침 반찬으로 새우젓 무청 시래기 찜을 먹고 힘차게 새로운 하루를 만나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