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거꾸로 있어요 ㅠ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아기가 거꾸로 있어요. 외회전 술(external cephalic version)이라는 것이 있다던데 할. 수. 있. 을. 까. 요?..' 말끝을 흐린 보라 씨는 일주일 후 외회전 술을 받으러 친정어머니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임신 35주, 여전히 아기는 머리를 위로 두고 있었고 아기 머리가 자꾸 치받쳐서 갈비뼈까지 아프다고 했다.


초음파로 아기의 위치와 크기를 재고 태반의 위치를 확인한다. 양수양도 아기를 돌리기에 적당한지를 보는 것 이 제일 중요하다. 다행히도 양수가 넉넉하다. 따듯한 요 위에 바로 눕히고 긴장을 풀어주려 너스레를 떤다. 남편을 처음 만난 이야기, 데이트한 이야기, 어머님이 고우셔서 보라 씨도 예쁜가 보다.... 등등의 이야기다. 미소는 몸과 마음을 말랑하게 한다. 더불어 내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낀다. 아기에게도 말을 한다. 내 소개를 하면서 만나서 반갑다고 엉덩이 쪽을 톡톡 두드려 준다. 너를 이제 만질 텐데 좀 불편하더라도 잘 견디라는 둥, 엄마가 너를 잘 낳아보려 애써 이곳까지 왔다는 둥, 나의 수다는 작은 소리로 계속된다. 골반에 끼어있던 엉덩이가 빠지고 7시 방향으로 힘을 가했다. 아기 머리도 동시에 한시 방향에서 세시 방향으로 살짝 돌려준다. 양수가 넉넉해서인지 아기는 20분 만에 자리를 잡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기의 움직임이란!

제왕 절개할 아기 하나를 구했다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보라도 내심 씩씩한 듯 보였지만 아기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는 말에 눈물을 훔쳤다가 이내 웃는다. 기분이 좋아진 모녀는 가는 길에 조산원을 둘러보며 '요즘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워요. 의사가 없는데 사람들이 아기를 낳으러 오나보죠? 병원 출산이랑 뭐가 다른가요?'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다. 길지 않게 한 마디로 대답해 주었다."산모와 아기가 주인공이죠. 이제 까꿍이가 자리를 잡았으니 이 곳서 한번 낳아 보시겠어요? " 대답 대신 긍정의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산원을 나갔다. 아기도 별로 크지 않고 보라 씨의 키도 훤칠해서 내심 내가 아기를 받았으면 하는 맘도 들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이십대라는 거다. 일 년에 채 열명이 되지 않는 이십 대의 출산은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지표기도 하다. 이십 대의 출산은 참 건강하다. 그러나 그 후 보라 씨는 연락이 없었다.


보라 씨가 다시 연락을 해 온 건 예정일을 2주 앞둔 날이었다. 아기가 계속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다며 기뻐했다. 조산원서 아기를 낳겠다고 했다. 여러 궁금증도 없다. 그냥 자신과 아기는 건강하니 잘할 수 있단다. 갑자기 남편이 동의가 궁금했다.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란다. 당찬 그녀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니 됐다. 그리고 외회전 술을 할 때 몸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난 흔쾌히 그녀의 조산사가 되기로 했다. 싱거운 그녀는 싱겁게 아기를 숨풍 낳을 것이다. 병원 진찰 결과도 나의 예상대로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만났다. 아기는 보라가 낳는 것이니 보라가 선택한 출산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아내의 선택은 항상 옳다며 슬쩍 아내를 띄워주는 말에 우리 모두는 손뼉 치며 웃었다. 이십 대 동갑내기 부부가 뭐 이렇게 싱거울 수 있을까!

조산원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많은 편견을 깨야 한다. 조산원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전투를 하는 맘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아기를 받아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가 없는 조산원 출산을 결정 하기까지 수월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위험하면 어쪄냐. 병원을 가게 되는 상황은 어떤 경우이냐. 아주 사소한 것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 시대에 그런 질문들은 당연한 것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해야 했다. 결국 조산원 출산을 결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당당한 여성들이었다. 자신의 몸에 대해 당당하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다. 공통분모는 임신과 출산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거다. 보라 씨도 그랬다.

진통이 오고 전방 멀리서 남편도 달려왔다. 진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는 보채지도 않는다. 잘 태어날 것이라는 확신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더 큰 선물로 돌아온다. 인생의 첫 고비를 넘는 아기가 가끔 힘들어하더라도 엄마와 아기의 끈끈한 유대는 아기를 살린다. 엄마도 아기도 이미 그 조화 안으로 들어와 있다. 하마터면 제왕절개로 태어날 뻔한 녀석이다. 3.1킬로! 초산치고 숨풍 낳았다. 기대한 대로 싱겁게 낳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기를 안아 엄마가 된 보라 씨 가슴에 안겨 주는 것뿐이다. 형아 덕분에 동생도 당연한 자연출산을 할 수 있었다. 첫아기 낳을 때 보다 더 싱거워진 그녀의 둘째 출산은 어땠을지 상상해 보시라!

이전 10화브이백(VBAC):제왕절개 후 자연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