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 리뷰
오늘은 미국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대표작인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하여 다루어 보겠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도, 제목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유명한 작품이고, 1951년 발표 이후 전세계적으로 누적 7천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죠.
작품 발표 직후 젊은 세대들은 엄청나게 열광했고, 주인공의 이름을 딴 "콜필드 신드롬"이 불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일부 기성 새대들은 작품의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죠.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던 이 흥미로운 작품을, 지금부터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1. 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고등학생입니다. 홀든이 퇴학을 당하고 학교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3일 간의 여정이,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홀든은 세상에 대한 불평과 냉소가 가득한데, 작품의 도입부만 읽어도 홀든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투덜거리는 말투가 재밌죠? 작품은 이러한 홀든의 불평과 냉소로 계속 흘러갑니다. 홀든은 학교를 불평하고, 친구도 불평하며, 학교를 나온 다음 뉴욕 시내를 떠돌며 이 세상을 불평합니다. 이 작품은 깊은 의미나 교훈을 찾지 않고, 그냥 읽기만 해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 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 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농구팀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뭉치지.
이렇게 도무지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홀든에게도, 어린 동생들만큼은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입니다. 홀든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앨리를 그리워하고, 부모님은 마주치기 싫지만 동생 피비를 보고 싶어 집에 몰래 들어가기도 하죠. 홀든은 동생 피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홀든은 뉴욕 시내를 떠돌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가, 결국 가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부로 떠나기로 결심하죠. 그러나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자 했던 동생 피비를 통해서 홀든은 행복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며 작품은 끝이 납니다.
"아까 말한 거 정말이야? 아무 데도 안 간다는 거 말이야. 나중에 정말 집으로 올 거야?" 피비가 물었다. "그래."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중략)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 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2. 샐린저와 홀든
세상이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하다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홀든은, 샐린저 본인을 녹여낸 캐릭터 같기도 합니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채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언론사의 인터뷰도 거부하고, 본인의 인생에 대한 전기도 거부했죠.
<호밀밭의 파수꾼> 초판에 본인의 사진이 실린 것도 샐린저는 싫어했고, 3쇄부터는 샐린저의 사진이 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즐겨읽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도 대부분의 작품에는 작가의 사진과 약력이 실리는데, 이 작품은 아무 것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처럼 성공을 거둔 문학 작품들은 영화화 되는 경우가 많은데, 샐린저는 이 또한 거부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홀든이 싫어할 듯해서 싫다." 아마도 샐린저는 작품이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상업적인 이유로 원작과 달라지고 왜곡되는 게 싫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세상을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둔하고 싶어했던 홀든은 결국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지만, 샐린저는 정말 은둔 생활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샐린저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2010년 사망했습니다.
3. 순수한 행복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 초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홀든 또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든은 정신적인 빈곤과 공허함을 느끼고,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의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풍요로운 미국이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가족이 둘러 앉아 바베큐를 구워 먹는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삶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러한 마음을 대변했겠죠.
홀든은 이처럼 공허한 마음을, 아이들을 통해서 채워 갑니다. 동생 피비를 비롯한 아이들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따지지 않고, 회전 목마를 타는 것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행복이죠. (국어사전을 보면, 순수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멀지 않은 과거와 비교해도 훨씬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미래를 걱정하거나,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순수한 행복을 만끽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홀든과 동생 피비의 귀여운 대화를 소개하며,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를 마칩니다.
"이마를 좀 짚어봐." 갑자기 그 애가 말했다. "왜?" "온도계로 잴 수 없을 만큼 뜨겁게 할 수도 있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숨을 쉬지 않고 굉장히 뜨거운 것을 생각하면 돼. 라디에이터 같은 거. 그러면 이마가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진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난 굉장한 위험에 빠진 것처럼 재빨리 그 애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말해줘서 고마워." "아니야. 오빠 손을 데게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 정도로 뜨거워지기 전에 멈출 거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