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철학 편 - 3. 진리에 대한 의심 B
* 여러분의 철학 입문을 위해, 중요한 것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쉽게 쓴 철학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편은 헬레니즘 철학 편 - 3. 진리에 대한 의심 A에서 이어지는 편입니다. 먼저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이제 본론인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를 알아보기로 한다. 헬레니즘 시기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급변하는 시기였기에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성행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회의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철학자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것에 의심을 품거나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예로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만,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회의적 태도(혹은 회의주의적)는 단순한 의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론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회의적 태도는 참된 인식이나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크라테스처럼 끊임없이 되묻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의적 태도를 부정적인 태도라고 보는 것은 속단일 것이다. 물론 회의주의적 입장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될 경우는 부정적일 수 있지만, 회의적 태도는 어떤 통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거나, 기타 인습들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서 회의주의 학파의 창시자라고 한다면, 피론을 일컫는데, 안타깝게도 피론은 남긴 저술이 없어서 직접적으로 연구되기보다는 그의 제자들이나 그를 연구한 다른 이들의 말에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피론은 아마도 회의주의자라면 그저 침묵하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여겼기에 저술을 남기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대에서 피론주의라고 한다면 극단적인 회의주의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졌다.
위에 기술한 대로 회의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묻는 소크라테스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소크라테스가 중요시했던 도덕적인 것들에 대한 것은 이어받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와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가 교묘하게 섞인 것이라 볼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대한 존재 역시 터무니없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객관적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당시의 논리학 역시 부정했다. 연역법은 진리인 듯해도 그 출발점인 하나의 가정, 즉 증명될 필요가 없어 보이는 확실한 출발점이라 해도 그것은 가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에서 나오는 모든 결론들은 허황된 것이라 여겼다. 귀납법 역시 부정하였는데, 귀납적 추리는 하나의 진리를 향해서 가거나 어떤 본질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경험들의 집합이므로 신뢰하기 힘들다 라고 여겼다. 물론 이 주장들은 일면 타당하게 보인다. 연역적 사고는 그 안에서는 마치 견고한 성처럼 전부 진실되지만, 그 성 전체가 거짓일 수가 있으며, 귀납적 사고는 단 하나의 반례만(블랙스완처럼) 나와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당시의 회의주의자들의 모습을 몇 가지 엿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좋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회의주의자들은 신에 대해서도 칼날을 들이댔는데, 모든 종교는 모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신은 무형적이거나 유형적일 것이고, 전지전능하거나 혹은 전지전능하지 않을 것인데 만약 신이 무형적이라면 인간들은 절대로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유형적이라면 그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끝내 사멸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신이 만약 전지전능하다면 이 세계에 나타나는 다양한 악들은 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매우 무책임하므로 신이라고 볼 수 없고,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신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회의주의자였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어쩌면 신은 존재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왜 이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이 실제로 등장하여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논쟁일 것이다. 이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론(論)을 변신론(辯神論)이라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해보면 알겠지만, 형태가 변하는 변신이 아니라 신을 변호한다는 의미다. 즉 변신론은 세계에 존재하는 악의 존재가, 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분야이다.
또 어떤 회의주의자들은 이런 연설을 하기도 했다. 첫날은 플라톤의 철학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고, 다음날에는 조리 있게 전날 했던 연설을 반박했다. 이들은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은 주관적으로 선택된 것이므로 도대체가 객관적인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가 강해져, 헬레니즘 시대의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들은 철학을 하는 하나의 방법인 회의적 태도를 극단적으로 추종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회의주의자들은 독창적인 철학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자들과 과거 소피스트들의 차이를 본다면, 과거 소피스트들은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각자의 의견을 주장했고,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자들은 기존 철학이나 통념적인 믿음에 대한 악의적인 파괴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과거의 소피스트들은 다시 만들기 위해 성을 파괴했고,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들은 성을 파괴하기 위해 파괴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회의주의적 태도는 계속 말했듯이 철학을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의 방법적인 측면으로 여겨야지 회의 자체에 대한 몰두는, 곧 믿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 그 어떤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 소피스트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변호했듯이 고대 희랍에서는 언변술과 웅변술이 꽤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수사학일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최초의 철학자들인 자연철학자들 이후에 출현한 철학자들이다. 자연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던 철학은 곧 인간의 문제들로 이어졌는데, 소피스트들은 인간들의 문제를 다루었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실은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항상 경계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의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언변을 이용해서 자신의 의견으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이기려 했으며, 그러한 기술을 돈을 받고 가르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통해서 소피스트들은 아주 안 좋은 이미지로 그려진다. 사실 소피스트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그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철학을 인간의 문제로 전환하였고 상대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등의 긍정적인 의미도 많이 있다.
* 방법
일반적으로 방법이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해 나가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취하는 방식을 의미하지만, 철학에서의 방법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에 이르기 위하여 사유 활동을 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철학을 하기 위한 생각의 도구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각을 하려면 정과 망치가 필요하듯, 철학을 하기 위해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 상대주의
상대주의는 철학자들 마다 느끼는 이미지가 다르다. 그만큼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간단히 알아본다면, 가치의 절대적인 타당성을 부인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한 나라의 풍습을 보고 미개하다고 조롱하는 것은 문화적 상대주의가 결여된 언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풍습을 기준으로 다른 풍습을 재단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당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상대를 타자화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과거 식민주의(植民主義)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철학자 소개
* 피론
회의주의 학파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철학자이다. 피론은 어떠한 주장이든지 간에 그것과 동일한 정도의 반대의견을 항상 대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대해서 단정 짓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가 어떠한 저술도 남기지 않았던 것 역시 이와 상응하는 바가 있다.
*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남긴 고대 희랍의 가장 유명한 소피스트이다. 소피스트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지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프로타고라스는 상대주의적 관점의 시조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당시보다도 후세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