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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03. 2018

수염 깎기 싫어!

내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


 난 수염을 기르고, 다듬는다.


 수염을 말끔하게 자르고 다니는 사람이나, 주변 여자들은 내게 종종 말한다.


 "수염 좀 깎아라, 지저분하게..."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는 수염을 깎을 생각이 없다. 수염은 내게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니까. 이게 무슨 말 이냐고?

 

 예전에 나는 원하지 않던 곳에 등 떠밀리 듯 취업을 하고,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아침이면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옷을 입고 일터로 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일을 했다. 다음 날이면 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퇴근을 해도 기쁘지가 않았고, 그저 잠깐의 휴식에 기뻐하는 꼴이 스스로 우스꽝스러워서 주말에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었다. 아마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 놈의 일 때려치워야지, 때려치워야지." 하지만 그러기가 힘들다. 나도 그랬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옷을 입고 일터로 나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고, 일터로 나가고, 그런 상황에 수긍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는 저항하고 있지만, 그 저항감을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 패배자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으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내 수염에게 한 수 배우는구나! 지금 처한 이 현실 속에서 오로지 이 수염만이, 이 수염만이 패배자 같은 나를 위해서, 대신 저항을 해주고 있었구나!


 수염은 깎여도, 깎여도 다음 날 아침이면 자기를 드러낸다. 사실 그 수염만이 내 저항 의지를 말 해주고 있었는데, 난 그것을 애써 못 본 척 깎고, 또 깎았던 것이다. 나는 매일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정확히 말해서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내 수염을 천천히 바라봤다.

 

 그리고 난 바로 일을 그만두고, 내 삶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일터로 나간다. 수염을 깎는다. 어떤 체계에 순응하기 위해서, 아니면 자신의 의지를 외면하려고, 아니면 들끓는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 아니면 먹고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나는 이제 안다. 다른 것들을 바라보기보다는, 차라리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나은 일이라는 것을.

 

 어쨌든 나는 이제야 거울을 바라보고, 내 수염을 바라본다.


 우스운 이야기였는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내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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