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섹스란 무엇인가? 섹스는 그저 성기끼리의 접촉, 삽입, 마찰의 과정을 통해 오르가슴이라는 결과 값에 도달하는 기계적 움직임인가? 이 대답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물음에의 찬성은, 곧 자신에 대한 기계로의 환원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 창조의 숭고한 행위,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감 따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섹스를 기계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에 대해, 오직 쾌락만을 위한 섹스보다도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섹스라는 행위는 사랑만큼이나 복잡한 무언가가 있음을 누구나 직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섹스는 정말이지 기계적이지 않다. 하지만 기계적인 섹스에 대한 거부 못지않게, 쾌락만을 위한 섹스 역시 거부 시 된다.
당연한 물음일지도 모르나, 인간이라면 대부분 섹스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가? 나는 당연히 동의한다. 섹스를 아직 하지 않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반쪽짜리 섹스(나는 이것을 자위행위라고 말하고 싶다)는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잘한 이유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정신적인 쾌락이든 육체적인 쾌락이든 쾌락을 즐기기 때문에,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쾌락이 교묘히 섞인 섹스라는 행위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섹스가 가지는 쾌락에 대한 옹호는 피임법의 발전만 보아도 충분하지 않은가? 이러한 발전은 쾌락의 둘레에 마치 안전한 성벽을 세우는 듯하다. 콘돔, 페미돔, 자연피임법... 그렇다. 섹스는 쾌락적이어도 상관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섹스를 안전한 쾌락이라는 지반 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쾌락을 위한 섹스, 아니 그전에 섹스를 떠나서,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는 오랜 과거부터 경멸의 대상이었다. 지나친 섹스는 어리석다는 생각에서, 섹스 자체가 터부시 되는 종교적인 생각으로의 전환은 언제부터였는가? 쾌락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이 상반된 생각은 도대체 무엇인가? 쾌락에서 반(反) 쾌락이 탄생한 것인가 아니면, 반(反) 쾌락에서 쾌락이 탄생한 것인가? 둘 중에 어떤 것이 옳든 간에 그 간극을 무엇이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윤리. 나는 그 이유를 윤리에서 찾는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면 안 된다. 어린아이를 학대하면 안 된다. 도대체 왜? 만약 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이런 생각 혹은 감정은 절대 학습된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에서, 쾌락만을 위한 섹스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역시 인간의 윤리성이 고개를 치켜세웠기 때문은 아닐까?
섹스에 대한 윤리성의 침범은, 극단적으로는 섹스를 터부시 여기게 만들었다. 이 알 수 없는 죄책감은 어린아이의 첫 자위행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죄책감은 쾌락 뒤에 따라오는 아주 무거운 그림자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섹스를 원한다. 섹스를 통해서 충분한 쾌락을 고통 없이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나는 윤리성에서 탈피된 섹스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리성의 침범을 배제할 수 있는 섹스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물음에 적은 가능성을 던지고 싶다. 그전에 우리는 윤리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가야 할 필요가 있겠다. 분명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이 아닌 윤리이다. 윤리란 도덕보다도 더 근원적인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다. 도덕이란, 문화와 그 문화의 토대 위에 세워진 법이 융합된 것. 윤리란, 인간성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어떠한 것. 그러기에 윤리란 문화를 떠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바. 윤리는 도덕에 비해서 그 범주가 넓다.
하지만 윤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인간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인간성이다. 도덕도 마찬가지겠지만, 윤리는 더욱 인간들에게서 생겨나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 단 한 명의 인간이 있다면(고독할지도 모르겠으나, 정말 단 한 명의 인간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윤리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홀로 존재한다면, 윤리성은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윤리는 인간성의 범주이기에, 윤리는 한 명의 인간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기에, 홀로 존재한다면 윤리성이 필요 없기 이전에, 윤리성 자체에서 탈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랑이란 무엇인가? 잘 지켜지지는 않겠지만,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하나의 환상. 사랑이란, 두 인간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 몸은 나누어져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적인 교류. 시대가 흘러도 우리에게는, 이 하나의 즐거운 환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자들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윤리성에서 벗어난 섹스에 접근하고 있다. 그 열쇠는 바로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면 윤리성의 테두리 밖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 공간에서 만큼은, 그들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된다면 섹스가 나름 숭고하게 여겨지든, 그저 쾌락을 위한 도구이든, 섹스에게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윤리성을 탈피한 아주 순수한 의미의 섹스. 이로써 섹스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우리는 그 본질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섹스가 쾌락적이라면 그것이 섹스의 본질이고, 섹스가 숭고하다면 그것이 섹스의 본질이며, 섹스가 창조적인 행위라면 그것이 섹스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섹스를 비윤리적인 섹스라고 말하려 한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윤리성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