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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29. 2018

구조주의 들어보셨나요?(3)

정말로 쉬운 구조주의 안내서


* 글이 약간 길지만, 차분히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거라 약속드립니다:)

* 내용이 길기 때문에, 3 부분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1. 구조와 구조주의

2. 소쉬르, 파롤과 랑그

3. 공시태와 통시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마무리




 마지막 연재에서는 예고했던 대로, 공시태와 통시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그리고 최종 정리를 하겠습니다. 1부와 2부는 잘 읽고 오셨나요? 중요한 내용은 전부 담으면서, 최대한 쉽게 쓰고 있는데, 이해가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내용을 이야기해볼까요?


구조주의 들어보셨나요? (1)

구조주의 들어보셨나요? (2)



공시태와 통시태


 공시태와 통시태는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에요. 이 공시태와 통시태는 소쉬르가 중요시하는 랑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알아두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조주의 언어학 분야 이외에도, 각종 역사 서적을 읽을 때도 간간히 나오는 개념이기도 하고요.


 공시태란, '정해진 시점(특정 시간대)'에서 작동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통시태는 '요소들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공시태는 어떤 관계, 통시태는 어떤 변화입니다. 공시태와 통시태는 일종의 번역어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실 텐데요. 쉽게 풀어 보자면, 공시태는 역사적인 관점이 아닌 특정 시점(가령 현재)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통시태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어떤 개념을 배울 때는 반드시 예시와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어떤 개념은, 경험이나 상황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일 테니까요. 자 언제나 그렇듯이 예를 들어볼까요?


 현대 영어에서는 you를 단수와 복수, 주어와 목적어 모두 같은 형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영어는, 주어의 you는 ye로, 목적어의 you는 you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서도 thee와 thou로 구분했죠.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러한 구분 없이 모두 you로 통일해서 사용합니다. 처음 들어보신 분들 많으시죠? 사실 저도 구조주의를 공부할 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저런 you의 변천사를 알고, 모르는 것이 현대에서 영어를 사용할 때, 어떤 도움을 줄까요? 아니죠?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영어를 못합니다. 이건 아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모르는 사실일 겁니다. 만약에 현대에서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한다면,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즉,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추적해서 통시적(언어의 변화과정)으로 연구한다고 해서, 현재의 언어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파악하는 것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문적인 의미는 있겠지만요.


 소쉬르는 일반 대중들은 언어를 이루는 요소들의 변화(위의 you의 변천과정처럼)를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상태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는 반드시 '과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 그러니 소쉬르는 당연히! 언어의 변화 과정(통시태적인)보다는, 현재의 시점에서, 언어를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공시태적인)에 더 집중합니다. 언어 요소(기호)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소쉬르가 말하는 구조(랑그)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2부에서, 소쉬르는 언어를 하나의 '닫힌 집합'으로 본다고 말했었죠? 언어의 요소들을 일종의 '기호'로 판단하고, 그 '기호들의 체계(가령 문법)'를 랑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쉬르가 말하는 기호란, '개념'을 의미하는 '시니피에'와 청각 이미지를 의미하는 '시니피앙'이 결합된 것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기호가 생겨날 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사이에는 절대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며, 자의적이라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사회적인 약속일 뿐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기호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결합입니다. 그 둘 사이에는 절대적인 연관성이 없고, 우연적이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자, 예시 들어갑니다.


 우리는 네 발이 달리고, 가정집에서 많이 기르며, 인간과 매우 친숙한 동물이고, 멍멍! 하고 짖는 동물을 '개'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이 동물을 'dog'라고 말하고, 일본에서는 'いぬ'라고 말하고, 프랑스에서는 'chien', 독일에서는 'Hund'라고 부릅니다. 즉, 같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게 불려지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동물인 '개' 자체를 시니피에(시각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고, 그 시니피에를 말하는 이름, 우리가 말할 때 뱉는 소리(개, dog, Hund 등)를 시니피앙(청각 이미지)이라고 합니다. 번역어로는 기표(記表,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시니피에)라고 말합니다. 기표와 기의는 들어보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사이에는 절대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의미가 이해가 가시죠? 그저 그 언어권의 약속일 뿐입니다. 우리가 '개'를 앞으로는 '과라락'이라고 부르자고 사회적으로 약속만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개'를 '과라락'으로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라락은 그냥 아무거나 쓴 거니 무시하세요. 그리고 제 이름이 '준영'인데, 따지고 보면 제가 '준영'이라고 불려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소쉬르는, 이 기호라는 것은 동일한 사회적 집단 안에서, 다른 기호들과 서로 '구분되기만'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즉 기호끼리의 구분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어 기호들과 외부세계(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우리의 실생활)의 관련성을 배제하고, 언어 그 자체로만 연구하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소쉬르가 말하는 '기호체계의 닫힘'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나요? 소쉬르는 기호체계의 닫힘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체스 놀이가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와 체스 말의 재질, 모양, 크기, 색깔 등은 체스 놀이를 이끌어가는 내적 규칙과 전혀 무관하다. 기물들은 재질, 모양, 크기, 색깔과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물을 움직이는 규칙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는 이와 유사한 모든 놀이, 가령 바둑, 장기 등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체스 놀이가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가? 는 중요하지 않다.
(통시태보다는 공시태가 중요하다)

말의 재질, 모양, 크기, 색깔
(다양한 시니피앙들, 혹은 파롤)

체스 놀이의 규칙
(랑그)

체스, 바둑, 장기 등
(다양한 언어들)


 추가적으로 소쉬르의 비유를 해석해뒀으니, 좀 더 이해가 되셨으리라 봅니다. 어쨌든, 소쉬르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는 기호들의 체계이며, 그 체계에는 내적인 규칙이 있고, 속해 있는 기호들은 서로 구분만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수학 기호는 사용하기 싫었는데, 오래간만에 한 번 사용해야겠습니다. 어떤 집합 S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S는 3개의 원소 a, b, c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S={a, b, c}입니다. 이 a, b, c 원소들이 고유한 기호로써 집합 내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 구분만 되면 됩니다. 즉 a≠b, a≠c, b≠c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집합 내의 a, b, c는 그 집합 내에서 고유한 역할이 가능해집니다. 소쉬르가 왜 언어를 기호들의 집합으로 이해했는지 감이 오시죠?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학의 문제를 기호체계로 이해하고, 언어학을 일종의 '기호학'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소쉬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어학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기호학적이다. 만약 언어의 진정한 특성을 찾으려 한다면, 모든 체계의 공통점 속에서 언어를 파악해야 한다. (중략) 또 이들을 기호학 속에 묶어서, 과학의 법칙에 따라 설명할 필요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쉬르에 의해서 언어학은 기호학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언어학은 과학의 분야에서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소쉬르의 언어학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이자, 비판받는 부분은 이 기호체계를 외부세계와 연결 짓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언어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인데, 이 언어를 인간에게서 완전히 떼어내서 연구를 하는 것이니까요. 언어생활의 본질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있는데, 언어를 닫힌 체계로 보는 것은 언어의 본질에서 사뭇 멀어진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소쉬르가 받는 비판은 일면 타당하고, 충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물론 소쉬르의 언어학도 당연히 타당합니다. 양 진영 모두 타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나오니,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것이죠.



마지막 정리


 여러분 너무나도 수고하셨습니다. 이 글을 정말로 차분히 읽으신 분이 혹시나 계시다면, 참 많은 것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랬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도록 하죠.


 구조 언어학은 20세기 초에 대두되었습니다. 이는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만 접근하는 기존의 언어연구방법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쉬르의 언어학은 인간들 사이에서의 실제 언어 수행보다는 언어의 체계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때문에 랑그와 공시태를, 파롤과 통시태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죠. 이는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함의하게 되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과거부터 이어진, '현상'이 중요하냐? '실재'가 중요하냐? 의 싸움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이런 논쟁 속에서 언어학은 새로이 발전했으며, 언어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1, 2, 3부를 차분히 따라오신 분이라면 저의 이 마지막 정리가 충분히 이해되셨을 겁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역시나 저를 탓하세요. 여러분은 잘못이 없습니다.



맺음


 사실 하나의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이해하듯이 사전을 뒤져서 읽어내는 것으로는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철학적 개념들은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또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조주의를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이 글이 짧지는 않지만, 구조주의를 개관했을 뿐 자세히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구조주의에 대해서 완벽히 알아서 자세히 쓸 수도 없고요. 저는 그저 구조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미지를 여러분께 드리는 발돋움 판과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린 이 구조주의의 이미지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책을 읽고, 사유함에 있어서 건강한 씨앗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구조주의를 더 잘 이해하려면, 구조주의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와 연계된 기호학, 구조 인류학 등도 논의해야 하고, 반대 진영인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아주 엄청난 담론이 되어버립니다. 이 다양한 분야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또 쉽게 정리해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참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 그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혹시 실존주의가 궁금하신 분이 계시면 아래의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오선비의 쓰레기 철학 강의 -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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