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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Apr 28. 2018

구조주의 들어보셨나요? (1)

정말로 쉬운 구조주의 안내서


* 글이 약간 길지만, 차분히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거라 약속드립니다:)

* 내용이 길기 때문에, 3 부분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1. 구조와 구조주의

2. 소쉬르, 파롤과 랑그

3. 공시태와 통시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마무리



 책을 읽다 보면, 드물게 '구조주의'라는 개념과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매우 불친절하게도, 구조주의가 무엇인지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고 휙! 지나가버립니다. 저는 철학책과 예술책이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주의의 개념을 알고 있다면 글이 잘 읽히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구조주의는 함의하고 있는 범위가 매우 넓어서, 따로 공부하지 않은 이상은, 만족할 만큼의 이해를 할 수도 없죠.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께 구조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글 자체는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하지만 구조주의가 의미하는 바가 넓기 때문에 글은 약간 길게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분히 따라오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되실 거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저를 믿고, 구조주의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구조와 구조주의


 우리는 흔히,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문제들을 보고 "어휴 이건 구조적인 문제여서 해결하기가 힘들어"라고 말하곤 하죠? 이 '구조적인 문제'는 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몇 가지를 제거하거나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죠.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장기적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썩은 정치인 몇 명을 솎아 내거나, 법안을 몇 가지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요? 아니겠죠? 아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만 해결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왜 오늘날 인문, 사회, 과학분야에 걸쳐서 넓게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우리가 어떤 건물을 보고 있다고 해보죠. 아주 멋지게 지어진 건물입니다. 우리는 건축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건물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뼈대가 잡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멋진 건축물에는 그에 걸맞은 완벽한 뼈대(구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위에서 보았듯이, 사실 구조와 구조주의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전혀 어렵거나, 문제가 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구조란, 다양하고 역동적인 현상(건축물의 겉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움직이지 않는 뼈대(구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조주의란, 그러한 뼈대를 탐구하는 한 방법입니다. 어때요? 어려운 의미는 아니죠? 


 하지만 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이 구조에 대한 개념이 왜 20세기의 사상계와 지식계에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일까요? 우리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본래 목적이기도 하고요. 자 이제부터 약간 집중하고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과거에서부터 철학계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싸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현상'과 '보편(혹은 실재)'의 싸움입니다. 쉽게 말해서 현상이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보편(혹은 실재)은 그 현상 너머에 있는 그것의 '본질'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해를 위해 거친 예를 들어드리면, 우리가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습니다. 빛을 받으며 반짝거리고 예쁜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상입니다. 현상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겠죠? 하지만 보편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가령 화학자 같은 사람들입니다. 물은 사실 H원자와 O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조식은 H2O이다. 그것이 물의 본질이고, 이것이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본질을 알아야만 한다. 이런 식인 것이죠. 현상과 보편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어때요? 두 진영이 입씨름을 할만하죠? 현상을 중요시하는 진영을 '현상의 진영'이라고 하고, 보편을 중요시하는 진영을 '구조의 진영'이라고 해둡시다. 현상과 구조 이 두 진영은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현상은 현상대로 예쁜 것이고, 구조는 구조대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 각자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이걸로 싸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두 진영을 통합하는 진영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두 진영은 함께하기가 힘듭니다.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현상의 진영은, 애초에 구조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문제로 삼습니다. 그리고 구조의 진영은, 현상의 배후에는 구조가 '반드시 존재한다'라고 여기며, 현상이란 구조에 종속된 덧없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애초에 서로를 어느 정도 배격하고 있죠. 그래서 이 두 진영은 박 터지게 싸우는 중입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증명(?)되게 되면, 다른 쪽 진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니까요. 막말로 한쪽 진영은 밥줄이 끊기게 되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단어 선택이 저렴했군요.


 하지만 이 두 진영의 싸움이 크게 번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극단적인 구조주의자들은 인간들의 자유의지마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죠? 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은 이런 것들은 그저 현상적인 것일 뿐이고, 사실은 우리의 이면에도 절대적인 구조가 있고, 우리는 그 구조들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괜한 반발이 일죠? 아니 우리 인간들이 기계처럼 어떤 시스템에 종속된 것이라고? 하면서요. 이처럼 현상과 구조의 싸움은 휴머니즘적인 느낌마저 자아냅니다.


 그러면 정확히 이 '구조'개념이 어디서 처음으로 부각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이 개념은 철학 분야에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뜬금없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는데, '언어학'분야에서 등장했습니다. 언어 연구에서 나온 이 개념이 모든 분야를 뿌리째 흔들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너도 나도 모두 어떤 것의 구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이 오게끔 만든 장본인은, 언어학 분야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페르디낭 드 소쉬르'입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어떤 언어학 연구 때문에 '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시 어려우셨다면, 제 설명 능력을 탓해주세요.





 현상의 진영과 실재(구조)의 진영, 그리고 그 통합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제 글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6 - 변화 속의 불변A

오선비의 철학사 탐방 07 - 변화 속의 불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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