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건강이 점점 더 안 좋아져서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며 할머니 수발을 들고 있단 소식을 들었다. 그걸 전해 오는 엄마의 목소리엔 애증이 가득했다. 할머니가 건강하게 사시길 바라지만 '나의 아버지'가 할머니 보단 좀 더 소중해서 늙어가는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소식을 전해 듣는 게, 명절 때면 그 모습을 나 또한 접하게 되는 게 불편하다. 며느리의 눈치를 살피다가도 늙은 아들에게는 응석을 부리고 더 아픈 티를 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제 모두에게 버겁다. 엄마도 아버지도 나이가 들었고 친딸인 고모들은 이 모든 상황들을 외면한다. 아프고 늙은 엄마를 오빠가 지극정성으로 알아서 잘 돌봐드리는 것 같아 보이니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되는 것도 같고 멀리 살아 챙기기 어렵다고 합리화 할 게 자명한 이해타산적인 딸들의 무서운 무관심.
할머니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편하도록 차라리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하실 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며칠 전 캐비넷 서랍 정리를 하다 작년 추석에 서른을 바라보는 손녀를 불러다 쥐어주신 헤져가는 누빔 지갑에서 꺼낸 두번 접힌 만원을 발견하고 나는 그만 주저앉아 울었다. 쓸 수 없는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