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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님 Nov 07. 2022

0. 작자 미상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그래도 내 마음은 정돈되지 않아 자꾸 눈물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된 지는 사흘 째다. 시작은 지난 금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아기돼지를 품에 안는 꿈을 꾼 날. 희망차기 그지없던 간밤의 꿈이 무색하게, 마지막으로 응시한 언론사 공채 면접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쳇. 인재를 못 알아보다니.' 옅은 농담으로 가뿐하게 채용 사이트를 닫은 뒤, 쌀국수를 먹고, 저녁엔 야구를 봤다. 내 하루는 여지없이 흘렀다. 


문제는 이튿날 시작됐다. 알람 없이 깨어난 아침, 눈을 뜨고도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이제 뭐 하지


어제의 불합격은 2022 하반기 공채 종료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나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면접 예상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는 일도, 1분 자기소개를 달달 외우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뉴스를 클리핑 하는 것도 이젠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내년 공채를 기약하며 변함없이 공부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더 솔직히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목표를 상실한 나는, 낯선 하루를 맞이한다. 눈을 뜨면 밥 먹는 일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놓인다. 그 거대한 막막함 앞에서 나는 부질없이 누워있기를 택한다. 가만히 누워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스크롤을 한참 내리다 보면, 스스로를 자각하게 된다. '아 나 뭐하고 있지.' 그럼 이내 책상에 앉아 이 책 저책 살펴보기 시작한다. 시간 낭비를 변명하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다. 그것을 증명하듯 내 책상엔 어느 때보다 두꺼운 책들이 쌓여있다. 얄팍한 하루를 매워보려는 시도다. 하지만 활자는, 진리 탐구는, 타인의 사견은, 가상의 서사는 내 하루를 채우기엔 한참 모자라다. 도저히 진도가 나지 않는 흑과 백의 세계 속에서 그 사실을 깨달을 때면, 나는 다시 저 바닥으로 기어 이불 위에 안착한다. 온종일 그 일을 반복한다. 


이제 내게 존재하는 것은 지겨운 24시간과 그 시간을 느리게 더듬는 무거운 몸뚱어리뿐.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존재하는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갑자기 삶의 이유를 상실했다. 사는 게 이토록 막막하고 두려운 것은 처음이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그 막막함 앞에서 나는 존재의 위기까지 느끼며 덜덜 떨고 있다. 대체 왜. 아주 간절한 것도, 오래 고대한 것도, 심지어 정석으로 준비한 것도 아니었던 '방송국 입사', 그것이 대체 뭐길래 나를 이리 흔드나. 


이유는 하나다. 공채가, 불합격이 그 이유가 아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단 하나, 자연인이 된 스스로다. 자연인 이해님. 소속도 직책이 없는, 이름 세 글자 앞뒤가 텅텅 빈. 학생 그리고 직장인을 거쳐 퇴사를 하자마자 부랴부랴 '신입 PD 지원자'라는 신분으로 이름표를 바꿔끼웠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표마저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렇다. 나는 처음으로 자연인이 되었다. 문제는 자연인 이해님은 소속과 직책, 정확히는 직업 없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PD 이해님', 'PD 지망생 이해님'이 아닌 스스로가 낯설다. 마치 평생을 풀네임 '이해님PD'로 살아온 것처럼, 반 토막 난 이름 앞에서 상실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다시 '이해님 PD'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정진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물음이 생기겠지만, 어쩐지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 이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것이라서, 이제 와 다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낯설다.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 와 진로를 다시 찾아야 하다니. 헛웃음이 난다. 하지만 삶에 대한 열정도, 냉소도 모두 걷어내고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는 분명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루를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인간 자연수명은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목표를 상실한 자연인 이해님은 지금 멸종 위기다. 


자연인 이해님이 수명연장을 위해 선택한 일은, 결국 글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자아 탐구, 더 자세히 말해서는 '나는 왜 사는가', 더 구체화해보자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일이다. 많이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은 이 일에 몰두하지 않고는 하루를 보낼 수 없다. 그래서 시작한 <작가미정 프로젝트>. 작가의 이름을 찾기 위한 일이고, 독자도 미정이다. 물론 내 이름을 찾는 여정에 작은 하트를 눌러주는 친구가 있다면 기쁠지도 모른다. 자아가 비대해보여도, 자기연민에 빠진 것 같아보여도 눈감아주시라. 


조금은 위태롭고 때로는 구질구질해보여도, 이 작가는 앞으로 스스로를 찾는 글을 써낼 것이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끝을 낼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케케묵은 사진첩과 일기장의 증언을 따라, 가끔은 사주명리학과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 타인의 말과 혼잣말과 끄적임을 모으고 모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되짚어가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인생의 막막함 앞에서 발버둥 치는 그 사람 이름은, 아직 모른다. 


이 글의 주인이 누구인지 되찾기 전까지, 수식어 없이도 내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해지는 그날까지, 작가는 미정이다. 



2022年 11月 7日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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