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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r 16. 2022

촬영장의 소소한 이(2)

“S양 있잖아. 실제로 보면 어때?”

내가 광고회사 다닌다고 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질문이 광고모델 얘기이다. 그런데 질문의 형태가 재미있다. 그냥 어떤지 물어보지 않고 “실제로” 어떤지 물어본다. 그 말 속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외모가 TV에서 보던 것 대비 어떠한지, 그리고 성격은 괜찮은지. 정부 인사 등을 임명할 때도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어떤 것 하나 흠이 없는 완결적 캐릭터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완결적 캐릭터인지의 여부가 광고일선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광고모델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사건사고로 인해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안 좋게 바뀌면 안되니까. 실제로 최종후보에 오른 제안 광고모델 중, 촬영장에서 컨트롤이 어렵다는 소문이 있는 이는 적극 추천을 꺼린다.


운 좋게도 나는 완결적 캐릭터의 광고모델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남자배우 K는 광고 커리어 초반에 만난 빅모델이다. TV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도도하고, 너무 잘생겨서 가까이 가기 어려운 면모가 있었다. 실제로 촬영장에서 보여준 그 분의 모습은 웃음이 많고 정말 따뜻했다. 야외 촬영을 하다보면 구경하러 나온 분들로 인해 촬영장 통제가 어려울 때가 있다. 중간에 촬영이 끊기면 예민해 질법도 한데   구경 나온 분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배우 K는 리더십이 매우 뛰어났다. 광고의 컨셉 상 많은 엑스트라와 함께하는 군무가 중심인 촬영이었다. 엑스트라의 대부분이 연극영화과 학생들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K씨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이를 알아챈 것일까. 촬영 종료와 동시에 그 많은 친구들을 촬영장 한가운데에 모았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돌면서 마무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때 느꼈다. 저 분은 높은 자리에 가도 사람들을 잘 이끌 것 같다.


또다른 남자배우 C는 대한민국의 대배우 중 한명이다. 실제로 만난 그 분에게서 스타의식은 전혀 못 느꼈고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만 가득했다. 촬영 중 식사시간에 보통 모델들은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 분은 스태프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우리와 함께 신나게 갈비를 뜯었다. 요즘에 아내 분께서 이런 음식들을 많이 안 해 준다며 정말로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스태프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식사에 몰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촬영 때는 중간중간에 감독과 교감하며 광고카피에 없는 이런저런 대사들을 시도해 보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전 스포츠 선수인 K양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비교적 긴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에너지를 소모해야 되는 순간들이 많아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K양은 우리가 오히려 걱정을 할 만큼 흐트러지는 모습 없이 해맑았다. 그동안 그 정도 업적을 쌓았으면 자존심 상 못한다고 튕길 법도 한데, 스타의 세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내면이 아주 단단한 사람 같았다.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잘 가꿔 온 그런 사람. 나이 어린 사람한테 배우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탑 아이돌 중 한 그룹도 있었다. 어린 친구들이라 통제가 안 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프로 중의 프로 같은 모습이었다. 키가 상대적으로 큰 멤버 둘이 친해 보였는데 서로 장난을 치다가도 촬영이 시작되면 오랜시간 집중하는 에너지가 좋았다. 리더 또한 선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풍기며 촬영에 진지하게 임했다. 쉬는시간에 자기들끼리 퍼렐 윌리엄스의 “HAPPY” 아카펠라를 하는데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 정도로 노래를 잘 할 줄은 몰랐다. 전반적으로 뭔가, 자유 분방해 보이지만 그 내부의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규율 안에서 정돈되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광고시장은 원체 빅모델 위주로 굴러간다. 주요인물들의 평판이나 향후계획 등을 잘 파악해 놓는 게 AE의 중요한 덕목인 이유다. 다만 직장생활이 그런 것처럼 따뜻하고 훌륭한 인물들만 만날 수는 없다. 다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좋은 모델을 만나면 그것대로 좋고, 반대의 상황은 오히려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기대했던 인물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고, 이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과정이 우리가 헤쳐나가야 되는 세상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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