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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Sep 08. 2020

우리 사랑 잘.

자식에 대하여

책방 2년 차 즈음되었을 때 우리 첫째 유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우리 둘째 유이가 유치원엘 입학했다.
두 아이 모두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시기라 세밀한 스케줄 관리와 아이들 마음 읽기가 더욱 중요한 때였다. 그러나 일정량 반드시 내 시간을 들여야 할 책방이 있었기에 다른 엄마들처럼 알뜰살뜰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닐 수도 없었고 흔히들 말하는 엄마표 친구들을 만들어 줄 수도 없었다.

언젠가 잠시 짬을 내어 학교 수업을 파한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수많은 엄마들이 횡단보도 건너에서 손 흔들어주며 아이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울적했던 때가 있다. 아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급식을 먹고 돌봄에 있다가 태권도 사범님이 데리러 오면 태권도장엘 갔다. 학원차로 아파트 공동현관까지 데려다주면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오지 못해 우앙~울음을 터뜨렸던 우리 유준이었다. 그 아이가 어느새 3학년이 되었고 우리 유이는 유치원 최고 형님이 되었다.

엄마가 엄마의 자아를 찾는데 다른 엄마들 보다(?) 조금 더 열정적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못 들이는 건 아닐까? 시간 시간마다에 갈등과 혼란이 항상 내재했었고 어떨 땐 내가 무얼 심하게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엄마의 품을 온전히 내어주지 못하는 것만 같은 미안함, 애잔함.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매일 미안해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내 마음과의 합의점을 만들어야 했다. 내 시간과 체력과 역량이 유한하기에 모든 역할에 완벽하기란 역부족이다. 일단 모든 역할에 완벽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역으로 읽어주었다.

유이와 유준이는 엄마의 삶의 동선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매우 예리하게 나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고작 일곱 살, 열 살 아이가 무엇을 깊이 분별할까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내가 쓰는 글을 옆에서 지극히 바라본다. 엄마가 그려놓은 유준 유이의 그림을 애틋하게 생각해준다. 나는 어느 한 시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하지만 너희들을 사랑하므로 더더욱 함부로 살 수가 없다. 매시간 아이들 옆에 있지 못해도 그것만이 너희들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유준 유이야
엄마가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문을 벌컥 열다가도 소롯이 엄마의 시간을 지켜주려고  문을 닫아주었지.
엄마가 읽는 책에 대해서도 기꺼이 페이지를 넘겨가며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봐 주고.
엄마의 삶을 사랑한다는 건, 또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전해지는 또 다른 에너지로 치환된다는 것을 굳게 믿어. 우리, 잘,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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