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OH Jul 13. 2022

나는 이제 한 마리 메기가 되고 싶다

책방 6주년을 맞으며

2016년 7월 1일 책방을 오픈했다. 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일생일대의 사고를 쳤다^^(그 해 사고 치기를 진심으로 잘했다!
9.2평 작은 책방을 4년 반 운영하고 1개로 시작한 독서모임과 프로그램은 10개 정도로 늘었다. 부서져라 일했고 눈이 까무룩해 질때까지 책을 읽었다.


도무지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 한가운데 모두가 무모하다 할 만한 일을 쳤다(벌였다)

2020년 가을, 나는 조금 더 큰 장소로 이전 결심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 버렸다.

나로선 중대 결단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19년 2월 19일 코로나 어퍼컷 한 방으로 책방 석 달 문을 닫았더랬다.

한 일주일 지나면 상황이 정리가 되겠지 했는데 2차, 3차 책방 휴무 공지를 달고 4차부터는 아예 무기한 책방 휴무,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열겠다는 공지하기에 이르렀다.

책방은  나의 꿈이기도 하고 무모하리만큼 겁 없는 도전이기도 했는데 코로나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게 생겼다. 나의 제2막 꿈은 3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인가...

그렇게 코로나와 고군분투를 한 지 1년 반 만에

나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책방을 옮기자!


주변에서는 일제히 말렸다.

그도 그럴 것이 1년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조용해지지 않을까의 기대를 냉정하게 저버리고 코로나는, 다시 재확산으로 떠들썩했다. 떼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찌 되었건 조금만 움직이면 다 돈인 마당에 확장 이전이라니.

그것도 수익에서 저 멀리 밀쳐진 분야, 책방 확. 장. 이. 전이라니. 책방을 처음 열 때처럼 모두 세상 물정을 저리도 몰라서 어쩌나 하는 눈치였다.

코로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가만히 있어도 적자에 폐업이 줄 줄인 마당에 월세를 세 배, 보증금을 두 배 올리고 인테리어와 기기들에 몇 천씩 쏟아부을 계획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밖에...


그런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모두 가만있는 게 돈 버는 거다 말해도

멈춰있는 건 싫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인지 계산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무모함의 딴짓이 곧 도전과 모험의 한 끗이라는 걸 책방을 하면 할수록 알겠더란 말이다.

나 자신을 믿는 만큼 그릇을 키우는 게 맞다는 판단이었다.

왜일까? 어째 설까? 그 당시에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9,2평 공간에서 내가 펼치고자 하는 많은 "하고픔"에 자꾸 제약이 걸리자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나 저렇게 스트레스받으나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돈에만 국한되는 문제라면 몸을 사려야 하는 게 맞지만

이제 좀 삶이 재미있고 이제 좀 공부하는 맛을 알겠는데

책방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하는 재미있는 계획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머리를 뚫고 가슴을 뚫고 나오는 마당에 무엇을 주저한단 말인가.

가만히 이 모든 욕망을 잠재우며 잠자코 있으려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이 코로나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모든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사는 을 쪼그라들도록 하더라도 어느 때곤 끝은 온다. 끝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은 적응하게 되어 있고 코로나 아닌 더 한 것이 와도 목숨 붙어 있는 사람의 삶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나의 삶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모두가 멈춰있을 때

다음 행보를 위한 그릇을 키워놓고 싶었다.

어떻게든 해 낼 수 있다.

무슨 자신감이었나 모르겠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공사 도중 계약 기간이 안 지켜지고 작은 약속 이행조차도 미루길 밥 먹듯 하는 업체 덕(?)분에 애를 먹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공간이 탄생했다. 카페 공간이 새로 생기니 아무리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도 취미가 아닌 영업을 위한 카페 창업 교육도 틈틈이 받아야 했다. 그 외 디테일한 장비, 가구 등도 일일이 발품 팔아 하나장만하손 안 닿은 곳 없이 그렇게 2021년 새로운 공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는다.

시나리오대로 되는 삶이란 단언컨대 없다.

코로나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한 모임에 코로나 안 걸린 사람보다 걸린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건 지인이건 코로나 확진 소식이 들려왔다.


2, 3명이 모여도 모임을 없애지 않겠다 생각했다. 많으면 제비뽑기 분반을 해서라도 기어코 어떤 식으로든 책방 모임을 꾸려 나갔다. 하루에 포스 결제 4000원이 찍힌 날도 있었다. 사람들 간의 불화로 교통정리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이 작은 공간이 작은 우주기도 하여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고 별의별 일을 모두 정돈하는 일도 오롯 나의 몫이었다.





제법 시간이 쌓였다.

코로나 3년의 시간이 지났고

공간을 옮긴  지 1년 반이 지났고


때로는 기쁜 환호의 날과

때로는 처참한 낙심의 날이

날실과 씨실이 되어 촘촘히 삶의 면을 만들어갔다.

1년이 지난 후, 2년이 지난 후 , 3년이 지난 후 그 모든 날들이 기억 속에 있건 없건 내게 모든 의미로 기억에 삶에  남았다.


그렇게 책방을 연지 6년이 되었다.


이제 또 어떤 그림을 그려갈까...


 제목도 가물거리는 책들을 일하듯 밥 먹듯 읽었다. 사람과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도 있지만

 가장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해 보았고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많은 일들을 만났다.

그 모든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내게 돌아온 것들은,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과

기꺼이 함께 공부하고자 남은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한 마리 메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수줍게 품는다.

내게 와준 많은 메기들을 보며...



'메기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북유럽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청어인데, 바다에서 잡은 청어는 항구에 도착하는 동안 대다수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따라 들어온 메기가 있던 수족관의 경우 꽤 많은 청어가 항구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요.' 한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효과로 '메기 효과'라는 말을 씁니다.

최재천의 공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