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먼지 쌓인 상자

생각은 발 밑에서부터 자라났다.

by Be okay




생각은 발밑에서부터 자라났다. 얇고 가는 뿌리처럼 천천히 올라와 나를 휘감았다. 몸을 지나 마음으로 그리고 머리끝까지 닿았을 때쯤 그 무게가 나를 조용히 짓눌렀다. 애써 외면해보려 했지만 뿌리는 이미 너무 깊이 내려 있었다.


마음속에는 오래된 창고가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한쪽 구석엔 손대지 못한 상자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오래된 상자 속엔 분명 중요한 것들이 있을 텐데도 손을 뻗는 일이 두려워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그저 쌓아 두고만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도 또 다른 착각일까. 그렇게 멈추고 떠난다고 해서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들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 질문들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오늘 퇴근길에 한동안 닫혀 있던 창고의 문을 살짝 열었다. 먼지투성이 상자를 조심스럽게 끌어내어 손끝으로 먼지를 털었다. 그 안에는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고민들이 들어 있었다. 크고 무거운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하고 작았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내 안에서 얼마나 큰 무게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먼지가 걷히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고 믿었다. 더 많이 채우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 중심에는 나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비어 있었고 그 빈 공간이 오늘날의 나를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된 상자 하나를 꺼내놓는다고 내가 달라질까. 아니면 이것도 그저 순간적인 기분일까. 알 수 없다. 오늘은 잠시라도 나를 마주하기 위해. 그 상자를 열어보는 데까지는 이르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는,


2023.8.24 01:35

새벽 퇴근길(수면 아래에 있는 불편한 모든 것들에 대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