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나비가
나에게 연애는 상당히 어려웠다.
얕지만 다양한 재주가 있다고 자부했는데, 연애만큼은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첫사랑이라 여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당시에는 나의 고백과 기다림, 연락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결과적으로는 이렇다 할 것 없이 스스로 마음이 정리되었다. 물론 그 사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있었지만, 크게 임팩트는 없었고 그렇게 내 20대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리고는 전 남자 친구를 만나고 3년 반, 그렇게 볼일 없이 또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작년, 나는 이제 헤어짐의 아픔에서 훌훌 벗어날 무렵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얼굴 볼 겸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나서 또 그렇게 지나갔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면서 그때마다 스쳐가는 사람. 항상 이 사람과 이러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고 오랜만에 나도 내 마음을 테스트해 보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구나를 확인했다.
'드디어 마음이 샐쭉 흔들리지 않는구나'
그리고 올해, 다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밥이나 한 끼 할까 하고 만났다. 여전히 매년 한 두 번 얼굴 보는 사이로 남아 있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나의 일방적인 지나친 감정이 사라지고 나니 긴장감도 덜하고 대화도 잘 통하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저녁 잘 먹고 여전히 그는 친절하게 집까지 바래다주었지만 이젠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니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두 번 더 얼굴을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길래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극장에도 가게 되고, 맥주 한 잔 하고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도 건넸다. 가벼운 책과 배스 솔트였다.
그렇게 연락은 이어졌다. 편했고 나쁘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차하면 발을 빼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상대방이 절대 선을 넘지 않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 봐온 세월에서 알 수 있었기에 나만 정신 차리면 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안된다', '네가 또 마음을 줘버리면 호구다', '더 이상 좋아하는 마음 따윈 없다'라고 나 스스로에게 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전에도 데일리로 연락하면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즐겁게 지내더라도 절대, 네버 스킨십을 하거나 풀어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 그였기에 나만 마음을 굳게 다잡으면 되었다. 아니! 다잡을 마음 따윈 이미 정리한 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모닝콜을 해주기 시작했다. 좋았지만 싱숭생숭했고, 재미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 좋으면서도 힘듦이 공존했던 것 같다. '이 사람 원래 이러니까', '어차피 될 리가 없잖아? 그냥 즐겨!'라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하루는 비가 많이 쏟아지던 날 그는 우리 회사로 나를 데리러 왔다. 주차장에서 만나 차로 이동하면서도 별 생각도 평소와 다른 느낌도 없었다. 한남동 와인바에서 한잔 하고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뮤직바. 대화를 나누며 음악도 듣고 오랜만에 조금은 내려놓고 풀어진 분위기. 잘 먹고 잘 놀고 나와서 다시 비로 젖은 한남동 뒷길을 걷는데, 그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기적이었다.
'스스로 먼저 잡았다고? 내가 아니라?'
어려서 상상은 많이 해봤지만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났고 이 사람이 이럴 리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나는 뿌리치지 않았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기억을 떠올려 봐도 뱃속이 몽글몽글하다.
Butterflies in my stom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