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수업 재밌었니?” 나는 쉬는 시간에 성준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을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팔을 뒤로 뻗어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내 입을 내리쳤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몸이 뒤로 휘청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성준이는 발달 장애를 가진 특수 교육 대상자이다. 국어, 수학은 소망반(특수 학급)에서 배우지만, 나머지 수업은 내가 가르친다. 성준이는 좀비와 파리를 싫어하고, 공룡과 대왕고래를 좋아한다. 숫자에 예민해 아침에 등교하면 칠판 꼭대기에 써 놓은 날짜부터 바르게 고친다. 몸집은 우리 반에서 가장 크지만, 예닐곱 살의 발달 수준을 보인다.
성준이는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에 눕기도 한다. 컴퓨터실에서 모니터를 내리치며 고집을 부려서 놀랐었다. 일반 수업이 아이에게는 힘든 환경이니 탓을 할 수도 없었다. 특수 학생의 담임은 처음이라 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은 1학년 때부터 같이 지내와서인지 익숙해 보였다. 성준이가 책을 더듬거리며 읽어도 참고 기다려 주고, 틀린 답을 말해도 격려해 주었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는데 성준이는 선을 넘어 공을 잡더니 농구 골대로 달려가 슛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해 주었다.
어린이날 즈음에 학년 체육대회가 있었다. 대표 종목은 반별 이어달리기. 5학년 전체 학생이 반별로 운동장 가장자리에 그려진 큰 원을 따라 달려 등수가 매겨지는 경기였다. 각 반의 자존심을 걸고,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웠다. 나는 체육 시간에 미리 성준이에게 달리는 방향을 알려주었지만, 그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뿐사뿐 이리저리 달릴 수는 있었지만, 목적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것은 무리였다. 평균 속도가 나보다도 빠른 5학년 동급생들과 달리면 한참 뒤처질 게 뻔했다. 그래도 나는 성준이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참여하고 즐기길 바랐다.
회의 시간에 성준이의 손을 잡고 같이 달릴 친구를 신청받았다. 여럿이 손을 들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원민이가 성준이의 달리기 짝꿍이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가 싶었다. 그런데 승부욕이 강한 몇몇이 반발했다. 성준이가 달리면 질 게 뻔하다며, 빼자는 것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숨을 고른 후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이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선생님은 승리보다 모두가 참여해 대회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 성준이도 우리 반이잖아. 1등을 하면 좋겠지만, 꼴찌를 하더라도 서로를 배려하는 우리가 더 자랑스러워. 그 대신 상은 선생님이 줄게.”
드디어 체육대회 날. ‘빨주노초파남보’로 학급 티셔츠를 입은 7개 반의 선수가 출발선에 섰다. ‘탕’하는 신호에 맞춰 경주가 시작되었다. 선두로 달리던 우리 반은 성준이 차례가 되자 다른 반과 반 바퀴 이상 뒤로 벌어져 버렸다. 대회가 끝나고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거친 호흡에서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미리 얼려 둔 색색깔의 젤리 스틱을 들고 가자 ‘우와’하며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얘들아, 잘했어. 우리 같이 시원한 아이스 젤리 먹자!” 녀석들은 모두 결과를 잊고, 신나면서도 신중하게 맛을 골랐다.
교실에는 다양한 빛깔의 젤리처럼 다채로운 아이들이 지낸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일본인으로서 영국의 공립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다양성이 있으면 매사 번거롭고, 싸움이나 충돌이 끊이지 않는 법이야. 다양성이 없는 게 편하긴 하지. 하지만 편하려고만 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지.” 미카코는 아들이 알아들었을지 못 알아들었을지 모른다고 썼다.
나 또한 아이들이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야 성준이를 만난 나보다는 덜 무지하고, 더 성숙하길 바라고 또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