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계 물어내!” 교실 앞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울부짖는 아이. 경수였다. 나는 학급 규칙을 어기면 구두 경고를 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의 경고를 받으면 방과 후에 남아서 자기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날 친구를 때리고, 여러 번 욕을 한 경수는 남아야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큰소리치며 가겠다고 했다. 나는 학생들을 복도에 두 줄로 세웠다. 그리고 경수의 손을 잡고 1층 신발장까지 하교 지도를 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 내손아귀를 벗어나려는 경수의 힘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보낸 후, 교실로 다시 올라가자고 하자 녀석은 집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손을 놓고 혼자 교실로 왔다. 그런데 집에 간 줄 알았던 아이가 다시 나타나 나 때문에 시계가 부서졌으니,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계의 깨진 곳은 모서리였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였지만, 물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학생마다 각자의 역량에 맞는 적정한 범위를 설정해 왔다. 학년은 같아도 인지적, 정서적 발달이 저마다 다르기에 무리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경수는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간혹 토라지기는 했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흥미 있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는 열정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이 정도 규율은 지킬만한 아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성을 잃고 막무가내로 떼쓰는 모습이 영락없는 대여섯 살 수준이었다.
녀석의 마스크가 흠뻑 젖어있어서 새 마스크를 건넸다(마스크 착용이 의무인 때였다.). 하지만 경수는 내 손을 뿌리치며 거부했다. 반성문을 쓸 종이를 주자 갈기갈기 찢어서 바닥에 뿌리고, 시계도 구석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면서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갈 수는 없다고,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수는 엄마도 분명히 당장 오라고 할 것이라며, 전화할 테면 해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께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지도하길 원하는지, 지금 집으로 보내길 바라는지 여쭈었다. 어머니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충분히 필요한 만큼 지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전화를 끊고 경수에게 말했다.
“경수는 훌륭한 어머니를 두었구나. 어머니께서는 선생님이 너를 제대로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어.” 실망한 아이는 기세가 한풀 꺾인 듯했다.
“선생님은 경수를 좋아했어. 그래서 아이들 몰래 초콜릿도 줬었잖아. 그런데 오늘은 경수가 화가 많이 났나 봐.” 나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경수는 방과 후에 나를 보러 교실에 종종 들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이랑 먹으라며 초콜릿 두 알을 쥐여줬었는데, 아이가 그걸 자랑했다던 어머니 말씀이 기억났다.
“마스크가 많이 젖었네. 이리 와봐.”
경수는 아까와는 달리 순순히 곁으로 왔다. 마스크를 벗기자, 코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시계 귀퉁이가 깨진 것을 보면, 내가 떠난 후 아이는 분해서 벽을 내리쳤을 것이다. 그때 유리도 깨지고 콧속 혈관도 함께 터진 모양이었다. 내가 눈물과 코피를 닦아주는데도 녀석은 잠자코 있었다. 나는 새 마스크를 씌워주며 말했다.
“억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겠지. 그래도 규칙은 지켜야 해. 다른 애들도 반성문을 썼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졌어.”
경수는 다시 새 종이를 받아 자신이 한 일을 가만히 써 내려갔다. 한 시간 반의 역동적인 실랑이 끝에 나는 반성문을 받고, 여느 때처럼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녀석은 웃으면서 어머니 것까지 세 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경수가 나가자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감정 조절이 어려워 심리치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오늘의 행동을 보니 다시 치료 초기로 돌아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기에 놀랐다. 아이로서는 규범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조마조마하셨을 텐데 오늘 이런 일이 생겨 죄송하다고 어머니께 거듭 사과했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선생님의 진심을 믿었다고 하셨다.
그 뒤로 경수는 틈만 나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뒷문이 열려있네.’라고 생각하며 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 닫을까요?”라고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내가 교탁을 들려고 하면, “어디로 옮길까요?”라고 하며 냉큼 달려와 번쩍 들었다.
학년 발야구 리그를 앞두고, 야구광 경수에게 우리 반 발야구 코치를 맡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코치를 신뢰했다. 경수는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해 각자에게 알맞은 역할을 정해 주었다. 그리고 감독인 내게 최종 결재를 요청했다. 다른 반의 전력과 요주의 선수까지 분석하며 대회를 준비한 경수는 탁월한 코치였다. 그 덕분에 우리 반은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키가 가장 작았던 경수는 까치발을 하고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는 아이들 틈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이듬해 스승의 날에 경수는 곱게 접은 카네이션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작년에 진짜 재밌었다면서, 이렇게 외쳤다.
“지금 담임 선생님은 악마예요!”
그래. 나도 녀석의 악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부모가 나를 오해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경수와 내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전적인 신뢰 덕분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추기경’으로 존경받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취임식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저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주실 때 제가 교황으로서 일할 수 있습니다.”라며 신자들의 축복을 구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것은 교황이 신도들에게 축복을 베푸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은 것이었다.
나 또한 학부모님께 “저를 믿어 주실 때 제가 교사로서 일할 수 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