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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Sep 21. 2024

용서하는 용기

  “어떤 새끼가 내 욕했어?” 준성이가 등교하자마자 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자기만 빼고 단체대화방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자기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의 휴대전화로 대화 내용을 살펴봤다. 준성이의 예상대로 우리 반 32명의 학생 중 그를 제외한 31명이 모인 방이 있었다. 그런데 준성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욕설이 오가기는 했다. 그런데 그 대상은 담임교사인 나였다.


  “저 미친 X, 또 XX이야.”라고 현태가 글을 올렸다. 이에 은지가 맞장구쳤다.

  “맞아, 지가 뭔데 XX이야. XX 재수 없어.”


  이에 반박하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전에도 학생이 학교에서 내 욕을 한 것을 직접 본 적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예뻐하던 은지와 현태가 공개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니. 그리고 진심으로 대했던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이에 동조했다고 생각하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실제 공간에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수치스러웠다. 내가 서 있는 교실이 단체방처럼 느껴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여럿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사실을 확인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현태와 은지를 불러 이유를 물었다.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 참여하라고 알림장에  것이 못마땅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학교의 전달 사항이었다. 둘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학교로 오시라고 하니 저녁 7시에나 가능하다고 하셨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6교시까지의 수업을 간신히 마쳤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기에 상처가 컸다.


  이 사실을 교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가족에게 위로받고 마음을 추스르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일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교감님은 자칫하면 학부모의 반감을 살 수 있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고 하시며 나를 말리셨다.


  “괜찮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적법한 절차를 여쭙고, 학교 차원에서의 의견 전달을 요청했다.


  어두운 교실에 혼자 남아 학부모를 기다렸다. 현태 어머니께서는 내 자식이 이럴 줄은 몰랐고, 잘못 키웠다고 우시며 무릎을 꿇셨다. 은지 어머니도 죄송하다고 하셨다. 면담은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지쳐서 집에 가니 어린 두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아들이 놀라서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충격받을까 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밤새 울었다. 아마 몇 년 치 눈물을 쏟아낸 것 같았다. 다음 날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출근을 못 했다.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갔던 엄마가 처음으로 결근하자 아들은 불안해하며 등교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녀오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아요. 학생들이 기다리잖아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는 어른이고, 내게 맡겨진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반을 졸업까지 이끌고 갈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후,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학생들을 만났다.


  내가 교탁에 서자 숙연해졌다. 아이들을 마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너희를 용서하기로 했어. 그것은 앞으로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는 의미지.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어. 나쁜 기억을 잊고, 내 상처도 너희 잘못도 다 껴안을 용기. 어른인 선생님도 이번 일이 무척 힘들었어. 내 편이 아무도 없고, 모두 내게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희도 앞으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어. 그럴 때 나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버텨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부탁한다. 앞으로는 용서받은 사람답게 행동하기를.”


  쉬는 시간에 나는 현태와 은지에게 다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웃어주었다. 몇 달 후, 우리 6학년 3반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용서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프레드 러스킨은 그의 저서 <나를 위한 선택, 용서>에서 "용서는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감옥에 갇힌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용서한 후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세상에는 나보다 억울한 사람들이 많고, 당시에 침묵하던 이들도 나를 걱정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용서를 선택한 뒤에서야 깨달았다.


  이듬해 스승의 날에 동원중학교에서 엽서가 왔다.


  "선생님, 저 현태예요. 제가 작년에 선생님께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용서해 주신 덕분에 중학교에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지은 나의 죄를 누군가 먼저 용서해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현태와 달리 나는 분들께 직접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분들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서를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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