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아이들은 유난히 목청이 좋다. 게다가 흥이 많아 고성과 괴성 사이의 높고 큰 소리를 자주 지른다. 덕분에 나는 귀가 아프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소음측정기로 재보니 90dB이 넘어간다. 이 정도면 정상인도 난청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란다. 어쩐지 집에 가면 귀가 먹먹하고, 자꾸 딴소리해 가족들의 핀잔을 받더라니. 하지만 이런 악동들이 마음껏 재능을 뽐내는 시간이 있다. 바로 음악 시간이다.
명수는 민요와 판소리에 능하다. 따로 배운 적도 없다는데, 구성진 소리가 일품이다. 특히 시김새와 추임새가 기막히다. 그래서 ‘산아지타령’을 배울 때, 아이들은 명수의 선창을 따라 부르며 노래를 익혔다. 그리고 명수가 메기면 나머지는 모두 한 목소리가 되어 받는 소리를 냈다. 명창 명수 덕분에 우리는 어깨춤이 절로 났다.
‘함께 걸어 좋은 길’은 부분 2부 합창으로 밝고 신나는 곡이다. 아이들에게 우선 노래를 들려줬다. 녀석들은 듣자마자 이렇게 어려운 곡을 어떻게 하냐며 아우성쳤다. 위 성부와 아래 성부의 가락 진행 방식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곡도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격려했다.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부르고 또 불렀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음정이 맞아가고, 아이들의 표정도 점차 환해졌다. 이제 성부를 합쳐서 부르자고 했다. 처음엔 미심쩍은 표정으로 시작했지만, 다 부르고 나니 그럴듯했다. 아이들도 ‘어! 되네?’ 하며 신기해했다.
나는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녹음하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녹음 버튼을 누르기 전, 나는 오른손을 펴서 조용히 다섯을 셌다. 모두 숨죽여 나의 손을 바라봤다. 반주가 흐르고 각자 맡은 부분을 신나게 불렀다. 녹음을 마치고, 다 같이 들어봤다. 아이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자기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또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시끄럽던 아이들이 조용히 집중했다가 터지듯 노래하는 모습이 신통했다.
얼마 전, 아파서 이틀간 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출근하니 칠판에 학급 칭찬이 20개나 붙어있었다. 저 정도 받으려면 보름은 족히 걸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강사 선생님께서 음악 시간에 주신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노래 실력 덕분이라며 기세등등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개수를 착각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못 믿겠으면 한번 들어보라며 한통속으로 큰소리쳤다.
‘별똥별’은 단조곡으로 서정적인 곡이다. 이런 곡은 개구쟁이 우리 반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첫마디를 듣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평소와는 다른 아이들의 구슬픈 발성이 곡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았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명수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더니 ‘별아~ 별아~내 소원 좀 들어주렴’ 하고 울부짖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놀라운 연기력에 나는 교탁을 부여잡고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 웃겨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결국 손뼉을 치며 브라보를 외쳤다. 이 곡은 분명 서양 곡인데 묘하게 한이 서린 트로트 감성이 느껴졌다. 녹음해서 우울할 때마다 들어야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음악 시간이 끝나고, 옆반과 축구 시합을 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어깨가 축 처진 아이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몇몇은 누구 때문에 졌다고 서로를 탓하며 실랑이하기도 했다. 그때 녹음해 둔 ‘함께 걸어 좋은 길’을 틀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손잡고 가는 길, 너랑 함께 걸어서 너무너무 좋은 길’
익숙한 가사에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약속한 듯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어느새 실패는 잊고,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음악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져다주는 분위기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 즐거운 노래를 함께 부르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은 듯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다.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합창하는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면서 굳었던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답답했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서 악동(惡童)들이 사고를 쳐 유난히 지친 날에는 악동(樂童)들의 노래를 듣는다. 요즘엔 거의 매일 듣는다. 병 주고 약 주는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