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간에 우유갑으로 가게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우유갑을 깨끗이 씻어 말려뒀다. 드디어 28개가 모였다. 나는 기발하면서도 아름다운 간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가게에 어울리는 간판을 시각적으로 디자인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흰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우유갑을 하나씩 들고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나는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봤다. 같은 종이를 나눠줬는데도 사용하는 방법은 저마다 달랐다. 겉면을 포장하듯 둘러싸기도 하고, 각각의 면을 잘라 붙이기도 했다. 붕어빵 가게를 만든 지영이는 벽에 다양한 붕어빵을 그렸다. 민수는 동물병원의 바깥을 벽돌 무늬로 꼼꼼하게 채웠다. 아이들은 붙이고 남은 종이로 울타리를 치기도 하고, 다 쓴 투명 파일을 잘라 무대를 만드는 아이도 있었다.
기찬이는 ‘나이트 글로리’라는 문구점을 만들고, 그 옆에 입간판까지 세워놓았다. 나는 멋지다고 칭찬하면서, 여기에 손님의 관심을 끌 만한 문구를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 깨끗토피아, CG핑, 왕관 탕후루 등 재치 있는 간판도 있었다. 같은 우유갑이었지만 같은 가게는 하나도 없었다.
교실 뒤편에서 동글동글한 동민이가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만들고 싶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뭘 좋아하냐고 물으니, "아! 생각났다!"라고 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더니 아귀찜 가게를 만들었다.
지원이가 지나가는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지원이는 커서 우주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러면 천체망원경 가게를 만들어 볼까요?”
“좋은 생각이네! 종이를 둘둘 말아 망원경을 만들어 붙이면 멋있겠어.”
전구에 불이 켜진 듯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바삐 손을 움직였다.
미술 시간이 끝나갈 무렵, 지원이는 내게 작품을 자랑했다. 그럴만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천체망원경 상점이었다. 녀석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커다란 원뿔대를 우유갑 위에 올렸다. 마치 첨성대 같았다. 그리고 종이를 둘둘 말아 만든 작은 망원경을 꼭대기에 설치했다. 망원경은 하늘을 향하여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선생님, 이렇게 움직여요.”
지원이는 망원경을 돌리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보니 망원경 아래에 고리 모양의 종이 띠가 붙어있었다. 그 띠가 원뿔대에 모자처럼 씌워져 있어 이것을 돌리면 망원경도 같이 회전했다. 덕분에360도 천체 관측이 가능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느냐며 감탄했다.
교육을 의미하는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했다. educare는 ‘밖’을 의미하는 ex와 ‘이끌다’는 뜻의 ducere를 합친 말이다. 즉, 교육은 잠재된 능력을 밖으로 이끄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재료를 주고,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아이들은 스스로 재능을 이끌어냈다. 나의 질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답을 찾은 것이다. 나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격려하고 자극했다. 교육은 '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다. 학생들 내면에 불꽃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바로 교육이 발생하는 시점이다.
작품을 전시하고 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기찬이가 만든 문구점 입간판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불알이 하나라네”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그 아래에는 이것을 간단한 도형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눈길을 끄는 내용을 적으면 좋겠다는 나의 조언에 기찬이는 이것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정말 기가 찼다. 나는 아이를 불러 이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키득거리며 어물쩍거렸다.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사진을 찍어뒀는데, 이대로 보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절대 안 된다며, 입간판을 떼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저런 말이 실제로 있었는지 검색해 봤다. 그런데 히틀러의 짝불알설은 정말 존재했었다. 저 문장은 세계 2차 대전 중 영국에서 널리 퍼졌던 노래 가사였는데, 히틀러의 주치의는 이를 부인했었다. 그런데 히틀러가 사망한 후, 그가 잠복고환으로 오른쪽 고환이 없었다는 신체검사 문서가 발견되었다. 나는 찍어둔 사진을 확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왼쪽은 O, 오른쪽은 X로 표시한 기찬이의 그림은 디테일까지 정확했다. 대단한 녀석이다. 덕분에 나도 배웠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비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