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새끼가 내 욕했어?” 준성이가 등교하자마자 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애들이 자기만 빼고 단체대화방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자기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의 휴대전화로 대화 내용을 살펴봤다. 준성이의 예상대로 우리 반 32명의 학생 중 그를 제외한 31명이 모인 방이 있었다. 그런데 준성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욕설이 오가기는 했다. 그런데 그 대상은 담임교사인 나였다.
“저 미친 X, 또 XX이야.”라고 현태가 글을 올렸다. 이에 은지가 맞장구쳤다.
“맞아, 지가 뭔데 XX이야. XX 재수 없어.”
이에 반박하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전에도 학생이 학교에서 내 욕을 한 것을 직접 본 적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예뻐하던 은지와 현태가 공개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니. 그리고 진심으로 대했던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이에 동조했다고 생각하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실제 공간에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수치스러웠다. 내가 서 있는 교실이 단체방처럼 느껴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여럿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사실을 확인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현태와 은지를 불러 이유를 물었다.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 참여하라고 알림장에 쓴 것이 못마땅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학교의 전달 사항이었다. 둘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학교로 오시라고 하니 저녁 7시에나 가능하다고 하셨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6교시까지의 수업을 간신히 마쳤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기에 상처가 컸다.
이 사실을 교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가족에게 위로받고 마음을 추스르라고 하셨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일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교감님은 자칫하면 학부모의 반감을 살 수 있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고 하시며 나를 말리셨다.
“괜찮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적법한 절차를 여쭙고, 학교 차원에서의 의견 전달을 요청했다.
어두운 교실에 혼자 남아 학부모를 기다렸다. 현태 어머니께서는 내 자식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잘못 키웠다고 우시며 무릎을 꿇으셨다. 은지 어머니도 죄송하다고 하셨다. 면담은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지쳐서 집에 가니 어린 두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아들이 놀라서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충격받을까 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밤새 울었다. 아마 몇 년 치 눈물을 쏟아낸 것 같았다. 다음 날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출근을 못 했다.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갔던 엄마가 처음으로 결근하자 아들은 불안해하며 등교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녀오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아요. 학생들이 기다리잖아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는 어른이고, 내게는 맡겨진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반을 졸업까지 이끌고 갈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후,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학생들을 만났다.
내가 교탁에 서자 숙연해졌다. 아이들을 마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너희를 용서하기로 했어. 그것은 앞으로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는 의미지.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어. 나쁜 기억을 잊고, 내 상처도 너희 잘못도 다 껴안을 용기. 어른인 선생님도 이번 일이 무척 힘들었어. 내 편이 아무도 없고, 모두 내게 등을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희도 앞으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어. 그럴 때 나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버텨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부탁한다. 앞으로는 용서받은 사람답게 행동하기를.”
쉬는 시간에 나는현태와 은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웃어주었다. 몇 달 후, 우리 6학년 3반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용서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프레드 러스킨은 그의 저서 <나를 위한 선택, 용서>에서 "용서는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감옥에 갇힌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용서한 후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세상에는 나보다 억울한 사람들이 많았고, 당시에 침묵하던 이들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용서를 선택한 뒤에서야 깨달았다.
이듬해 스승의 날에 동원중학교에서 엽서가 왔다.
"선생님, 저 현태예요. 제가 작년에 선생님께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용서해 주신 덕분에 중학교에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지은 나의 죄를 누군가 먼저 용서해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현태와 달리 나는 그분들께 직접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분들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