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연구 모임이 있어 스터디 카페에 갔다. 예약한 방을 찾아가는데, 옆에 유리문 너머로 큰 열람실이 보였다. 그 안에는 칸막이 책상이 벽을 둘러 붙어있고, 가운데에 긴 책상이 놓여있었다.그런데 공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이 익었다. 누구였더라. 어디서 본 듯한데 가물가물했다. 세미나를 하는 내내 그녀가 맴돌았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가 출입문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그녀도 나를 아는 것 같았다.
“혹시 저 아세요?”
“네”
“제 제자였나요?”
“네, 김경보 선생님”
“아 그렇구나! 그럼, 일신 초등학교?”
“아니요. 해선 초등학교요.”
“정말? 그렇게 오래됐다고? 이름이....”
“저 세영이에요.”
“아 맞다. 김세영”
해선 초등학교 3학년 3반 김세영. 까무잡잡한 피부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10살의 세영이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까매도 저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세영이는 눈빛이 맑고, 웃으면 주위가 환해지는 아이였다. 운동도 잘하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 내 모습을 그려 선물해 줬던 기억도 났다. 세영이는 공대를 나와 지금은 엔지니어로 일한다고 했다. 그때도 예뻤는데 지금도 예쁘게 잘 컸구나,라고 하니 어떻게 자길 기억하냐며 신기해했다. 나는 내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 아이가 신기했다(솔직히 나는 그 시절 은사님들의 이름을 대부분 잊었다.).
“그런데 선생님, 정말 신기해요. 저 어제 선생님이 써준 편지를 읽었어요.”
“뭐라고? 내가 쓴 편지라고?”
“네, 선생님이 써 준 손 편지요.”
게다가 손 편지라니. 지금도 학기 말이면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 주곤 한다. 하지만 손 편지는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아직도 갖고 있다니. 게다가 그걸 읽은 다음 날, 나를 우연히 만났다니. 정말 신기했다. 내가 썼다는 그 편지는 이제 내게 없었다. 그래서 혹시 생각나면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 세영이에게 문자가 왔다. 정말 내 글씨가 맞았다. 그런데 15년 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구겨지거나 상한 곳도 없었다. 편지의 주인인 세영이가 고이 보관해 준 덕분이었다. 나도 책상 서랍이 아이들의 손 편지로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손 편지가 귀한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소중한 3학년 3반 아이들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2008년 11월에 내가 둘째를 임신해 출산휴가에 들어간 날에 준 것이었다. 헤어지게 되어 아쉽고,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3명 아이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각자의 별칭도 붙어 있었다.
'호기심 왕 영훈이, 예쁜 깜 씨 세영이, 그림 잘 그리는 체조 소녀 미현이....'
잊은 줄 알았던 아이들의 이름을 보자, 한 명 한 명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임산부여서 내내 배부른 모습만 보여준 게 미안해, 예쁘고 날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겠다고 편지에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듬해 복직하면서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고, 나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편지가 세영이와의 마지막이었다.
출근하느라 바빴을 텐데, 잊지 않고보내줘서 고맙다고 세영이에게 답했다. 그리고 많이 늙어버린 선생님을 알아봐 줘 고맙다고. 잠시 후, 세영이에게 답장이 왔다. 자기가 어렸을 때 저 편지를 읽으며 좋아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런 걸 보면 어린 세영이에게 내가 참 좋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세영이는 그때도 나의 좋은 면을 봐주는 아이였음을. 그리고 이제는 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하며, 그것을 자주 꺼내 보는 아름다운 어른이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