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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Nov 13. 2024

무서운 학교

  춥고 광활한 운동장. 숨고 싶지만, 가릴 것이 없다. 옷깃을 여며도 바람이 선득하다. 손끝이 시리다. 내 앞에 거대한 건물이 버티고 있고, 정수리 위에서 처음 보는 어른이 날 내려다본다. 속이 울렁거린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학교의 첫날이다.


  나는 빠른 연생도 아닌데, 초등학교에 일찍 들어갔다. 동급생보다 많게는 18개월이 어렸다. 공부를 잘해서도, 덩치가 커서도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기관은 학교가 처음이어서 ‘ㄱ, ㄴ, ㄷ’도 몰랐다(언니와 남동생은 유치원을 다녔으니, 그 시절에도 보통 유치원에 갔고, 입학 전에 한글을 깨쳤다). 체구도 작아서 줄의 맨 앞에 섰다. 교실 의자는 딱딱하고, 책상은 차가웠다. 친구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짝꿍은 책상에 금을 긋고, 지우개라도 넘어가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맞았다.


  우유 당번은 나만 빼고 우유를 나눠줬다. 내가 달라고 하면, 몇몇이 서로 내 우유를 머리 위로 주고받으며 끝내 주지 않았다. 그러면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혼났다. 애들이 주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으셨다.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울었다. 아니, 거의 매일 울었다. 오늘은 제발 울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받아쓰기나 산수 시험을 보면 낙제였다. 그래서 나머지 공부도 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못난이에게 돌을 던졌다면 아마 내가 맞았을 것이다.


  비 오던 어느 날, 하교하려고 복도에 두 줄을 서 있었다. 선생님은 우산꽂이에 남아있던 우산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내 것이었다.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고 뺨을 맞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는 차가운 점박이 시멘트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혼자 일어다. 지금도 그때 빙글빙글 돌던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학교의 첫해이다.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수줍고, 미숙하고, 더딘 아이들이다. 그 곁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복도를 지나가다 동료 선생님과 마주쳤다. 민승이가 반에서 가장 힘들다고 내게 하소연했다. 녀석은 작년에 우리 반이었다. 언제나 교실에서 가장 늦게 나오고, 밥도 마지막까지 먹었었다. 뭐든지 더뎌서 작품을 제때 낸 적이 없고, 준비물도 걸핏하면 빠뜨렸다. 학습은 당연히 부진했고, 질문해도 우물거렸다. 민승이 하나 때문에, 반 전체를 모아야 하는 서류를 내지 못해 다른 반 눈치가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니 녀석이 눈엣가시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민승이가 손이 많이 가기는 했지만, 견딜만했다(대신 다른 선생님은 내가 놓치는 아이를 챙긴다. 그래서 매년 담임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제도이다). 남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거짓말하는 아이들이 내게는 훨씬 더 스트레스였다. 아마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탓일 것이다.


  어느 반을 맡든 어린 시절의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 가장 약하고, 조용한 아이. 이유 없이 친구들이 말을 걸지 않고, 은근히 무시하는 아이. 오늘도 소민이가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오전에 나눠준 마리모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전에 마리모 키워본 적 있니?”

  “네, 있어요.”

  “정말? 선생님은 안 키워봤는데, 언제 키워봤어?”

  “유치원 때부터 키웠어요. 지금도 있어요.”

  “아직도 살아있다고? 정말 잘 돌봐줬구나! 떠오른 적도 있니?”

  “네, 몇 번 본 적 있어요.”

  “이따 아이들에게 얘기해 주면 좋겠네. 그런데 이것 좀 도와줄래?”


  아이는 귀찮아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소민이와 내가 함께 수업준비를 하고 있으니, 몇몇 학생들이 궁금해하며 모여들었다.


  “얘들아, 소민이 집에 마리모가 있대.” 내가 대신 자랑했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물어봤다. 소민이 얼굴이 밝아졌다. 내 마음도 놓였다.


  내가 여린 아이들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나를 돌보는 중이다.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어린 나를 나 자신도 외면했었다. 나도 내가 싫어서 아무에게 내색도 못 했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외로웠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이따금 원인 모를 설움이 폭발하는 걸 보면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나 보다. 나조차도. 그래서 나에게 미안하다. 민승이를 기다리며, 어린 나를 들여다본다. 소민이의 손을 잡으며, 어린 나를 일으킨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학교를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몰랐다. 가끔 출근이 두렵기는 하지만, 이제 학교가 무섭지는 않다. 학교에서 모두가 편안하길 바란다. 마주 잡을 손이 있어 따스한 바람이 부는 곳이길 소망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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