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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Nov 07. 2024

글을 버리지 않으면

 지난 일요일은 구미에 있었다. 지난 8월에 사전신청한 북토크가 있는 날이었고 북토크는 오후 5시였지만 오전 10시 30분에 구미에 도착했다. 북토크 시간보다 한참 앞당겨 가게 된 이유는 처음 가보는 도시인 구미를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여정에 함께한 언니는 대구에 본가가 있어서 대구와 가까이 있는 구미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가족들과 종종 포장해 갔다는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어릴 때 자주 찾았던 금오산을 함께 걷기도 했다. 아버지가 농자 짓는 땅이 구미에 있다는 이야기도 동생네가 살았던 아파트가 저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언니의 어린 시절 추억을 듣고 있으니 처음 오게 된 도시와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검색해 찾게 된 카페에는 곳곳에 고양이와 관련된 소품이 많았다. 디저트로 주문한 만주도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고양이 모양이라서 ‘어떻게 잘라….’ 하며 한참 고민하다가 세로로 길게 잘랐다. 한참 공간을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다 챙겨간 책을 나란히 펼쳐 읽었는데 ‘구미 하면 마이구미지'하며 농담처럼 나눈 대화 후 펼친 책에 ‘마이구미’라는 단어가 나와 신기하기도 했다. 이날 북토크는 최진영 작가와 김화진 작가의 합동 북토크였고 요조 작가와 임경선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북토크 한 시간 전 미리 도서관에 도착해 북토크를 기다리면서 ‘최진영, 김화진, 요조, 임경선 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하고 생각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진 북토크는 종합 선물 세트 같았고 좋았다는 말이 납작하게 느껴질 만큼 많이 웃고 조금 울었다. 요조 작가와 임경선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에 대한 생각과 발견한 키워드 등 두 분의 해석을 듣는 기쁨과 김화진, 최진영 작가의 목소리로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품에 담은 정서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북토크에서 나눈 모든 대화와 사전질문 그리고 이어진 현장질문까지, 모든 질문과 질문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서 눈과 귀와 손이 모두 바빴다. 북토크에 가면서 어떤 책을 챙겨갈지 고민하다가 최진영, 김화진, 임경선, 요조 작가님의 책을 모두 챙겼다. 그중 최진영 작가의 책으로 『겨울방학』을 챙겼는데 작가의 말에서 감사함을 표현한 김화진 편집자가 동명이인이 아닌 옆에 앉은 김화진 작가란 걸 알게 돼 깜짝 놀랐다. 편집자는 내 글의 첫 독자이면서 나의 글을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임경선 작가의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어느새 ‘우리 OO님’이 된 함께 독립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님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현장질문 시간에 많은 분들이 손을 들었다. 묻고 싶은 질문이 있어 마지막까지 손을 들었는데 김화진 작가님이 선택해 주신 덕분에 최진영 작가님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질문은 2011년 출간한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와 2019년 출간한 단편소설 『겨울방학』의 「돌담」에 있는 어떤 문장을 두고 한 나의 해석과 그 문장을 다시 한번 쓰게 된 의미를 묻는 말이었다. 작가님은 질문으로 인해 「돌담」을 쓰게 된 시점으로, 김화진 작가가 편집자일 때 자신에게 원고 청탁 전화를 걸어왔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까지 확장되는 순간을 사랑한다고, 그런 순간을 만날 때가 소설가의 기쁨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질문했던 문장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었다. 작가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었고 질문을 듣는 동안 『끝나지 않는 노래』에 썼다는 사실이 생각났다고 했다.)

 또 다른 현장질문으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독자가 ‘책이 한 사람을 달라지게 한 장면을 목격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러 힘든 상황으로 자해까지 하던 아이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읽고 난 후 짧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자신은 그 아이에게 ‘글이 좋다. 계속 써보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어 작가님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려주시면 꼭 전하겠다는, 밤새 고민하며 쓴 편지 같은 목소리는 듣는 내내 울컥하게 했고 한순간에 그곳의 공기를 달라지게 했다. 작가님은 ‘네가 글을 버리지 않으면 글은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전했다. 노트에 필기한 내용을 복기하기 전 머릿속에 남은 이야기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눈 대화들을 바탕으로 오늘을 기록해 본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북토크를 한 단어로 압축해야 한다면 사랑일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다양한 사랑의 모양을 만나고 돌아왔다.


(20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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