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짧은 소설 낭독회
2주 전 노은도서관 사서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낭독회의 오프닝 낭독과 질문 진행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진행 연락을 받고 나서 지난 2주 동안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품고 지냈다.
오프닝 낭독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읽는 일이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낭독한 소설을 모아 만든 단편 소설집이다. 낭독할 단편을 선정하기 위해 한참 책을 읽다가 인쇄 실수로 단편 하나가 실리지 않고 앞서 읽은 단편들이 다시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출판사에 연락해 책을 교환받은 후 펼친 단편소설이 바로 오늘 내가 낭독한 「거기 까만 부분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13분 정도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10분 미만으로 낭독해 달라고 해 그중 일부를 꼽았다. 낭독할 부분이 정해진 날부터 매일 소리 내 읽었다. 7분 분량의 단편을 매일 읽고 녹화 후 재생해 다시 들으면서 발음이 불분명하거나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7분을 넘지는 않는지 계속 체크했다.
낭독이 처음이라서 낭독과 관련된 영상을 보며 낭독하는 법을 익히고, 작품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작가님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작가님이 출연한 팟캐스트도 부지런히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낭독회에서 나눌 질문을 꼽았다. 작가님의 낭독 원고는 낭독회 전날 공유받을 수 있었는데, 처음 전달받은 내용과 달리 책에 수록되지 않은 미발표 원고라서 질문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낭독회는 수요일 오후 2시에 노은도서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12시에 공간을 마감하고 1시간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낭독회가 진행될 홀을 살폈다. 100명이 넘는 독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점검한 후 자리로 돌아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2시가 되어 사서님의 소개와 함께 단상에 올라섰다. 작가님의 소설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작가님에게 누가 되지 않게, 오시는 분들에게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천천히 소리 내 읽었다. 원고를 쥔 손은 떨리고 마이크를 잡은 손도 떨렸지만, 다행인 것은 문장을 욀 정도로 연습한 덕분에 목소리만큼을 떨리지 않았다.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작가님의 낭독과 음악을 감상했다. 작가님의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사서님이 독자들이 포스트잇에 남긴 질문 중 일부를 건네주셔서 내가 준비한 질문 사이사이에 배치했다. 두 편의 낭독과 음악 감상이 끝난 후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낮은 원형 테이블 사이에 작가님과 나란히 앉아 준비한 질문들을 드렸다.
‘낭독회를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소설 제목을 떠올리면 낭독회를 진행했던 장소와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함께 생각나는지, 낭독을 위한 소설의 경우 집필 방식에 차이가 있는지, 「지금은 햇귤을 맛볼 때」를 낭독회 원고로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작가님에게 소설가와 소설은 어떤 의미인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단어가 있는지.’
사실 준비한 질문은 이보다 더 많았다. 내가 낭독한 단편 「거기 까만 부분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약전을 집필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었지만, 미리 질문지를 살펴본 사서님이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해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질문들을 통해 이미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작가님에게 드린 마지막 질문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단어가 있는지였다. 작가님은 분명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작가님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독자들께 다음 소설집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전하며 질문을 마무리했다.
낭독회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사인회 줄이 길게 이어졌다. 나 역시 2주간 품고 지낸 책에 사인을 받았다. 작가님은 내가 단상에서 내려간 순간 단어가 떠올랐다고 하셨다. 작가님이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약함’이다. 작가님의 다음 소설집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약함’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낭독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홀가분함만이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 90%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120%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낭독 방법을 찾아보고 반복해서 소설을 읽고 다시 들어보고, 작가님의 인터뷰와 낭독을 찾아본 것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처음 낭독을 연습할 때는 화자가 남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왜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약전을 쓰는 활동가가 여자일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로 해 보자. 약전을 쓰게 된 활동가 양다혜가 되어보자.’ 내 목소리로 전달할 때 의미가 깊어진다는 것을 낭독을 반복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날 낭독회에는 온라인 글쓰기를 함께했던 분, 함께하고 있는 분, 책으로 연결된 여러 인연이 함께 있었다. 덕분에 낭독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하늘 님은 내게 목소리가 단단하고 차분해서 놀랐다고 해 주셨다. 꼭 내가 쓰는 글 같은 목소리라고 해 주셔서 그 말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어떤 경험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된다. 어제의 하루를 위해 지나온 시간은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밤하늘을 관찰하는 태도를 학생들이 잊지 않도록, 어쩌면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 선생님은 그런 사진을 우리에게 찍어주신 게 아니었을까요?”라고 주희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이 세상이 온전히 내 눈앞에 펼쳐졌다. - 김연수 「거기 까만 부분에」『너무나 많은 여름이』”
(202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