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일요일이었던 정기 휴무를 월요일까지 하루 더 늘렸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쉬는 날을 갖기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만든 휴무였던 터라 병원 진료를 받거나 은행 업무를 보기도 빠듯한 경우가 많았다. 새 학기부터는 관공서와 연계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하게 되어 워크숍이 있을 때마다 운영 시간을 조정하는 대신, 월요일에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월요일 정기 휴무는 디자인 외주 작업을 위한 미팅과 청소년 대상 워크숍 운영, 은행 업무와 병원 진료를 위해 만든 날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일들이 없을 때는 비움과 채움을 위한 휴식의 날이기도 하다. 막상 월요일이 되니 길 잃은 강아지 마냥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핸드폰으로 오전에 문을 여는 카페를 연신 검색했다. 첫 휴무이니 기분 전환 겸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가 거의 없어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동안 거의 못 갔던 공간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분명 운영 중인 것을 확인하고 찾았는데, 막상 가보니 문이 닫혀 있어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가까이 두고도 마감 후 바로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눈에 익은 길과 낯선 길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가려고 했던 카페도 돌아가는 길에 보니 열려 있어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책을 꺼냈다. 식물 그림자가 페이지 위로 드리워지는 것을 보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공간에 오시는 분들도 이런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템포가 빨랐던 음악이 어느새 차분한 클래식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오전 시간 유일한 손님이었던, 책 읽는 손님을 위한 사장님의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1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공간을 찾아 그동안 미뤄 두었던 창고를 청소했다. 공간 뒷문 옆에 작은 컨테이너 창고가 있는데, 짐을 넣어 두기만 하고 잘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어느새 필요한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한데 섞여 발 디디기도 힘들 만큼 비좁아졌다. 박스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 필요한 물건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아 정리가 필요한 참이었다. 짐 사이로 난 작은 통로로 몸을 구겨 넣어 창고 안으로 들어간 다음 큰 짐부터 밖으로 빼면서 하나씩 정리를 시작했다. 75리터 종량제 봉투가 다 찰 만큼 많은 쓰레기와 박스가 나왔다. 창고 정리부터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는데, 밀린 숙제를 마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청소가 오래 걸릴 것 같아 전날 예매했던 영화를 취소한 참이었는데, 지금 출발하면 영화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예매했다.
이날 본 영화는 1995년 일본에서 개봉하고 국내에서는 1999년에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러브레터〉의 30주년 기념 영화였다. 상영관에는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두루 보였다. 언젠가 본 기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국내에서 개봉했을 당시 내 나이가 열 살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おげんきですか。 わたしはげんきです。)'라는 대사가 너무 유명해 보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국적인 풍경 때문인지 그다지 촌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창고 청소만 하고 휴무를 마칠 뻔했는데 영화를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마침 같은 층에서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 전시도 함께 관람했다. 마티스의 드로잉 작품부터 컷아웃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서투르더라도 드로잉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아침을 지나 30분 동안 산책을 하고 1시간 동안 책을 읽고 2시간 동안 창고를 청소하고 영화와 전시를 보고 충만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이런 시간을 종종 내게 쥐여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월요일이었다. 다음 휴무에는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아마도 습관처럼 공간 문을 열었다 닫기도 하겠지. 공간을 연 뒤로 따로 시간 내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일이 너무 많을 때는 통창 앞 테이블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할 테고. 다만,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되더라도 내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
(202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