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지만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물론 그 범주가 작아진다 할지언정,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역시나 아니다.
(사실 그림이라는 게 잘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에는 정답이 없기도 하고)
오래오래 그리고 싶다.
오래오래 그림을 그려도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연필을 끝까지 붙잡고 있고 싶다.
그 오랜 시간은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 마치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 Dahlov Ipcar처럼 98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그림을 그린 다는 건, 수만 가지의 이유를 다 지우고 여전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직업과 일이 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의 꼬리가 길어져버렸다. 하지만 그 꼬리의 꼬리들을 따라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다면, 결국 다시 처음 그 마음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이 한 줄만 남게 되겠지.
늘 보던 선반을 어느 날 갑자기 그려보고 싶고
산책을 하다가도
즐거운 공연을 다녀와서도
낯선 타국에서 아침 식사를 하더라도
그림을 자꾸만 그리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이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일을 수십 년 동안 좋아서 계속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세계 제일보다 더 큰 꿈일지도 모르겠다.
30대가 되어 20대보다 더 좋고, 지금보다 40대가 더 기대되는 건
여전히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illustrated by okayt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