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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티나 Feb 03. 2016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졌다.

아주 운 좋게도



십 년 동안 '오케이티나'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작업을 했다. 수백 가지의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휴대폰의 배경화면과 메신져 이모티콘들, 브랜드와의 협업, 삽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아마도 이름보다는 그림 자체로 다양한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왔다. 

초창기 작업인 싸이월드의 공이 컸다. 그 당시 싸이월드는 지금의 여느 그림 포트폴리오 사이트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서, 싸이월드 스킨 작업을 보고 여러 작업들이 줄이어 들어왔다.

더군다나 내가 처음 스킨 작업을 시작했던 2006년에는 개인 작가가 샵을 운영하거나 스킨을 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1~2년 후에 그런 채널이 생기기 시작함) 나 역시 개인사업자 등록을 통해 업체로 들어갔고, 지금 생각하면 대학생이 참 당돌하고 겁이 없었다.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대가로 십 년 넘게 매달 수십만 원의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내고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는 업체가 아니라면 부디 원천징수로 일하는 방향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 삼성 휴대폰 햅틱 시리즈에 들어있던 배경화면 작업 -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


그 운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건, 내 그림 실력이 아닌 '어떠한 곳에 꾸준하게 내 그림을  노출시킬 수 있었던 것'. 전 국민이 보는 싸이월드에 내 그림을 올릴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고, 그 밖에도 중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개인 사이트와 사적인 공간이었던 미니홈피에도 늘 꾸준하게 '그림을 올리고 있었다.'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타블렛이 없어 마우스로 그린 그림들, 색연필로 그리고 스캐너가 없어 화소가 낮은 카메라로 찍어 색감이 다 날아간 그런 사진을 내가 좋아서 계속 올리고 있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올리고 있었다. 수준 미달인 그림인데도 꾸준히 올리다 보니, 그 걸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들어오고, 그 일들을 즐겁게 하다 보니 지금은 그게 내 일이 되었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  그것만큼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즐겁게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였다.'가 아니라 수동형으로 누군가에 의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가 정답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그림 작업이라도, 클라이언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게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단점이다. 물론 직접 독립 출판도 가능하고, 굿즈 제작도 가능하며, 아트마켓에 참여하거나 스스로 일을 만들어 갈 수는 있지만 분명 다른 종류의 클라이언트는 늘 존재하게 된다. 더군다나 계속 혼자 운영하다 보면 그 모든 걸 관리하기 위해서 그림 작업보다 운영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유통과 제작을  관리해야 하는 그런 일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내가 그랬다.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그야말로 '부수적인 일'로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그럴수록 그림이 더 그리고 싶어 졌다. 혹은 그림 그리는 나와 업무를 돌봐주는 내가 둘이면 얼마나 좋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을 나는 정말 간절히 했었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져 있었다.



- 추억의 싸이월드 스킨 '오케이티나' 썸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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