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지영 Jun 30. 2017

1% 의 가능성, 원고 투고로 출간하기

책으로 나온 <소년의 레시피>

나는 메일함을 지켜보고 있었다. 웨일북 출판사 권미경 대표님은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고 21분 만에 답장을 보내왔다. 재밌게 읽기 시작했다고, 기획회의에서 에디터들과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금요일 늦은 오후에 연락드리면 어떨까요?’라는 문장 때문에 가슴이 사정없이 두근거렸다. 2017년 2월 8일 수요일 오전이었다. 



금요일 오후까지, 그 문장을 닳도록 읽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물러나는 게 순리에 맞는 일인데도, “아직은 더 추워야 해!”라며 저항하는 2월. 너무너무 추웠다. 밖은 금방 어두워졌다. 제규는 부엌에서 음악을 크게 켜고 파스타를 만들었다. 나는 허기가 졌다. 술이 당겨서 캔 맥주를 땄다. 



“제규야, 근데 서울이랑 군산은 시차 있지 않냐? 서울은 대도시니까 '늦은 오후'는 밤 11시 59분까지 아닐까?"

“그래염~.” 



맥주 한 캔에도 몸이 뜨뜻해졌다. “안 되면 말지, 뭐” 체념하는 순간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웨일북 출판사 권미경 대표님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늦었다면서, 내가 보낸 글이 탄탄하고 깔끔해서 좋다고 했다. 에디터들도 그렇단다. 꺄아! 글을 채택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홍대역 근처에 있는 웨일북 출판사에 갔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날. 나는 학교에 못 간 제규를 데리고 동네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감기 걸려서 밤새 열이 났던 제규는 “괜찮으니까 엄마 먼저 가요”라고 했다. 나는 애를 두고 집으로 (걸어서 3분 거리) 달려왔다. 지난 몇 달간 간절하게 바랐던 일,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생방송으로 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지켜봤다. 웨일북 출판사 직원들도 사무실에서 방송을 켜놓고 들었다고 한다. 선고 직후, 창문을 열고는 “파면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고. 일치된 기쁨! 권미경 대표님은 에디터들이랑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기 전에 계약금을 보내주었다. “작가님들 입금해드릴 때가 즐거워요”라면서.


웨일북 출판사를 두 번째로 찾아간 날은 3월 29일이었다. 책에 넣을 수도 있다고 해서, 제규가 쓴 레시피 노트를 갖고 갔다. 대표님은 작업 중인 <소년의 레시피>를 보여주었다. 실물 사진 대신 일러스트가 들어간 디자인.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는 그림 속 제규와 꽃차남은 진짜 ‘의좋은 형제’ 같았다. ‘제규 누나’처럼 나온 사람은 나였고.^^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온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조언은 옳다는 말이다. 출판사 대표님은 내가 쓴 30편의 글 중에서 4편은 빼자고 했다.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편집자는 글 속에 뚫려있는 구멍을 볼 줄 아는 능력자. 권미경 대표님은 26편의 글 중에서 절반 정도는 꼭 집어주면서 한두 문장씩 더 쓰라는 ‘오더’를 내렸다.



이미 마침표를 찍은 글에 덧붙이는 작업은 쉬울 리가 없지. 원고 쓰던 시기에 찍어둔 사진을 보고, 잡담 파일 속에 묻어둔 글까지 살폈다. 갈피가 잡히는 듯 했다. 그러나 대선을 열흘쯤 앞둔 때. 나는 틈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따라다녔다. ‘물봉선과 떨어져 깨진 홍시감과 껍질 까진 밤송이’를 두고서 정치에 몸을 던진 그를 지지했다.


 

“만세!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대통령 선거 출구방송을 보는 우리 멤버의 절반은 열 살 미만. 일곱 살인 지후, 아홉 살인 시후와 꽃차남은 소파에서 펄쩍펄쩍 뛰며 승리를 만끽했다. 잔칫날에 치킨이 빠져서야 쓰나. 기분 좋게 먹었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는 춤도 췄다. 시후와 지후 형제는 집으로 올라가고(위층에 산다), 식구들은 잠들었다. 나는 거실에 남아서 개표방송을 봤다.


   

대선 끝나고도 마음은 두근두근. 울컥, 할 일도 많았다. 다들 그렇단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PDF 파일로 보내준 3교 교정을 볼 때는 감정을 억눌렀다. 막판에 권미경 대표님은 책표지 시안 여섯 가지를 보내줬다. 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보는 이마다 선호하는 게 달라서 웃겼다. 물어보면서도 ‘이 사람은 어떤 걸 고를까’ 기대가 됐다.


   

<소년의 레시피>는 6월 5일에 나왔다. 군산 한길문고에는 6월 6일에 입고되었다.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증정본을 따로 보내주지만, 못 기다리는 나는 사러 갔다. 오, 예! 오자마자 ‘베스트셀러’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 특별판 옆에 <소년의 레시피>, 그 옆에는 내가 쓴 <우리, 독립청춘>. 서점 진열이 그토록 아름답다니, 울 뻔 했다.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는 책을 출간할 때 “어둠을 향해 뭔가를 던지는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아무 반응이 없으면 역시 무섭습니다”라고 했다. 무명의 작가인 나는 어쩌겠는가. 과일가게 사장님에게, 미용실 원장님 부부에게 “문재인 후보 좀 부탁드려요”라고 할 때처럼, 누구라도 붙잡고서 “<소년의 레시피> 좀 사주세요”라고 하고 싶다.


 

“근데요, 내가 왜 당신이 쓴 책을 사줘야 하나요?”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나는 얼굴이 좀 빨개지면서 대답도 똑똑하게 못하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안 읽는다. 사는 게 피곤하고 외로워서 독서할 여력이 없다. 짬이 나면 그냥 스마트폰을 한다. 그 안에는 감동과 재미, 정보가 있다. 친구까지 있다. 굳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사지 않아도 괜찮다.  



클래스 자체가 다른 책과 스마트폰. 밀리는 쪽은 책이다. 그런데도 출판사는 책을 출간한다.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나도 소도시 청년들의 삶을 담은 <우리, 독립청춘>을 썼다. 공부 대신 밥을 한 제규 이야기 <소년의 레시피>를 썼다. 누군가는 소년의 기타를 쓰고, 또 누군가는 소년의 서예, 소년의 발레, 소년의 축구공 같은 글을 쓰기 바라면서.  


지난주 금요일, 나는 서울에 갔다. <소년의 레시피> 2교를 보고 있을 때에 한 출판사 대표님이 연락을 해온 적 있다.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산 사람들, 그 삶을 두고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잘 모르지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통화 한 지 두어 달 만에 만나게 된 거다. 



우리는 1시간 좀 넘게 얘기를 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점점 따갑게 느껴졌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나는 집에서 일부러 가져간 <소년의 레시피>를 드렸다. 책을 받은 대표님은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맨 뒤에 있는 발행 부분을 보더니 물었다.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네요?"

"네. 다 팔린 건 아니래요. 서점에 배본이 많이 되어서 창고에 책이 200권도 안 남아서 또 찍은 거라고 들었어요. 근데 저 이 책, 출판사에 투고한 거예요."



투고한 원고가 책이 될 확률은 1%도 안 된다고 한다. 나는 몰랐으니까 도전했다. 어느 인터뷰 글에서 “저자가 쓴 연애편지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라고, “그 책을 읽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게 책”이라고 말한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냈다. 그래서 나온 <소년의 레시피>, 언젠가는 아이들에게도 수백 가지의 길이 열릴 거라고 낙관하는 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