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가 책이 되기까지
지난해 봄에는 ‘파면놀이’가 유행이었다. 뜬금없는 게 이 놀이의 핵심이었다. 바람을 쐬러 갔다 오는 길 위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 거실에서도, 식구들 중 누군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말한다. 다른 식구들은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 어깨춤을 춘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발밑에 핀 개불알꽃은 시들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벚꽃이 지자 햇볕은 따가워졌다. 내 두 번째 책 <소년의 레시피>는 장미꽃이 만발하는 6월 초에 나올 예정이었다. 책은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 교정 작업을 세 번 거친다. <소년의 레시피> 2교 작업 중이던 어느 날, 내 블로그 방명록에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출판사 이와우 우재오입니다. 출판관련 문의를 드리고 싶은데요. 연락드릴 곳을 찾다보니 블로그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요. 이메일 혹은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나는 홍대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이와우 출판사 우재오 대표님을 만났다. 그는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얘기를 했다. 대표님도 꿈꾸는 삶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살아본 적 없는데, 서울에서 스무 밤쯤 자본 게 전부인데, 서울을 떠난 얘기를 쓸 수 있을까. 우재오 대표님은 “삶에 관한 거니까 쓸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고민에 짓눌릴 새 없이 걸려온 전화. 군산 한길문고의 문지영 대표님이었다. “오늘 서울 왔어요. 세 번째 책을 쓸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내 기분은 허공에 뜬 것 같았다. “축하해! 이제 1년에 한 권씩 책 내네. 한길문고에서도 열심히 팔게.”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 서울을 떠나서 지방에 제대로 안착한 사람 몇 명을 떠올렸다.
“작업은 편하신 쪽으로 하시면 좋을 듯해요. 진행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계약서 보내드려도 될까요?”
출판사 대표님의 메일을 받고 한 달쯤 지나서 일을 시작했다. 얼마만큼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인터뷰 하러 가는 길은 긴장된다. 습관적으로 큰애 학교 가는 길로 가는 바람에 차를 돌렸다. 구시가로 가는 길가에는 배롱나무 꽃이 피어있었다. ‘이 동네 가로수가 배롱나무였던가?’ 혼잣말을 했다.
첫 번째 인터뷰이 이근영씨. 서울생활은 ‘연예인’으로 시작했다가 문화관광부 마케팅 담당으로 끝마쳤다. 군산으로 내려와서 하루의 반나절은 자신의 낯을 깎아서 밥집 사장님으로 일한다. 나머지 반나절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간여행마을’을 되살리는 연구를 한다. 원주민이 떠나지 않고도 성장하는 마을을 만들고 있다.
출판사 대표님은 이근영씨 글을 읽고 “메시지가 없는 일반인 다큐처럼 느껴집니다”라고 했다. 어수웅 기자가 소설가 미루야마 겐지를 인터뷰하고 쓴 글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미루야마 겐지는 원래 아우라를 내뿜는 사람이다. 요리로 치면 최고의 재료다. 이근영씨도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에 딱 맞는 사람이다. 답은 나왔다. 내가 글을 못 쓴 거다.
“고민이 깊었습니다. 두 번째 보내주신 글을 읽으면서 정말 뒤죽박죽된 느낌이었어요. 저자가 ‘니가 요청한 건 알겠는데 어찌 수정해야 할진 모르겠다. 아, 머리 아퐈. 머리 아퐈’라고 마구 외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ㅠㅠ”
고쳐서 보낸 글을 읽은 우재오 대표님의 평가였다. 그러나 ‘계약을 무르고 싶다’는 마음은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에 KO패. 내가 쓴 두 가지 버전의 글을 섞어 놓은 편집자의 고뇌를 보았다. 스티븐 킹의 말을 떠올렸다.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편집은 신의 일이다”라고. 글을 세 번 고쳐 쓰고 나니까 세 번 피고 진다는 배롱나무 꽃이 완전히 졌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동네에서 살고 있다. 부부는 회계사와 영어유치원 교사로 받던 연봉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삶을 택했다. 우리는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질까 봐 점심도 걸렀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아, 빨리 집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해서 집으로 왔다.
“보내주신 글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더 좋은 듯해요. 이번 글은 지리산 자락 그들의 터전과 삶이 막 상상됐어요. 부럽고, 한편으로 저도 막 힐링되는 느낌도 들고요.
사진을 넣는 게 좋을까요? 실제로 보면 상상하는 멋진 광경이 깨져버릴까요? 글을 읽으며 보고 싶은 마음은 강력했어요. 그들의 삶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멋진 풍경도. 각 챕터마다 사진 두세 장씩은 들어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은 상품이다. 팔아야 한다. 그래서 네 번째 인터뷰이는 이름이 알려진 박상규 기자로 섭외했다. 그는 서울 사대문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퇴사했다. 가난하고, 못 배워서 살인 누명을 쓴 이들의 이야기를 다음 스토리펀딩 ‘재심 프로젝트 3부작’에 쏟아 부은 사람이다. 독자들이 10억을 모아준 ‘셀럽’인데 우재오 대표님은 몰랐나 보다.
"박상규님 편 끝까지 못 읽고 도저히 참기 힘들어 8페이지 읽다가 문자 보내요. 10점 만점에 10점!!! 저도 이 분 좀 소개시켜 주세요.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에는 예닐곱 편의 글을 싣기로 했다. 반환점을 돈 작업. “편집자는 제가 쓴 글이 좋다고 늘 격찬했습니다”로 끝날 리가 없다. 다섯 번째 인터뷰이의 글을 출판사에 보냈을 때, 우재오 대표님은 “우리가 말하는 것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에요”라고 했다. 글을 고치라는 게 아니라 책에 넣지 말자는 뜻이었다.
흔한 게 고난과 역경이다. 털썩 주저앉았다가 일어선 사람에게는 귀인이 찾아온다. 나는 프리랜서 편집자 박진희씨를 만나러 제주도에 갔다. 우연과 운명이 남발하는 고대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글을 읽은 우재오 대표님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도입 부분 택시기사 이야기가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답이 뒤쪽에 있더군요”라고 했다.
<중쇄를 찍자!>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감수성과 감각이 제각각인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조정해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다”라는 말. 나도 그 만화가들처럼 편집자 덕분에 성장하고 있는 거겠지. 후배 최자매는 “이 분은 언니를 한 단계 올려놓겠네. 제대로 된 편집자를 만난 듯하다”라고 말했다.
음하하핫! 편집자에게 점점 인정을 받는 몸.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나를 막 대했다. 딸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전남 장흥으로 귀촌한 회사원 신정원씨를 만나고 오는 길. 안 그래도 되는데, 목포 시내까지 차를 이끈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에 특유의 ‘유턴 훈련’을 몇 번이고 시켰다. 깜깜해져서야 집에 온 나는 바로 글을 썼다.
“책을 읽은 독자가 ‘그래 나도 용기가 생겼어’란 생각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신정원씨 글은 저도 읽으며 엉덩이가 들썩거렸어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적당히 속이는 삶’, ‘행복은 사소하고 엉뚱한 곳에서 온다’, ‘서울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곳이 되었다’, ‘문명의 결핍은 없다, 탁월한 선택이었으니까’.
정말 멋진 문장들이에요. 가슴에 콕!콕! 세종도서 2회 연속 수상자의 글쓰기는 다르네요.”
여름에 시작한 글쓰기는 눈이 두 번 내리고서야 끝났다. 추위와 긴 어둠이 지겹다는 사람들의 불평이 쌓여 하늘에 닿으면 칼바람은 순해진다. 양지에 쪼그려 앉아서 개불알꽃을 보는 봄이 온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는 삶을 떠나다>는 책도 나왔다. 서울 사람들만 읽으라는 책이 아니다.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현실적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책은 생존과 관계없는 사치품. 먹고사느라 메말라진 일상에 주는 수분이다. 생필품도 아닌 이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의 가장 큰 기쁨은 초판이 다 팔리는 것.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는 아직 1쇄. 무명의 작가를 수련시킨 편집자도, 출판사도, 글을 쓴 나도 이 한 마디를 기다린다.
“2쇄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