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방(마루)은 우리 집에서 독서의 자기장이 가장 세게 흐르는 곳이었다. 봄볕이 토방에 들고 제비가 처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을 때쯤부터 나는 거기 엎드려서 책을 읽었다. 부화한 새끼 제비들이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자기 머리통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는 것도 쳐다봤다.
새끼 제비들은 금방 몸집이 커져서 둥지를 떠났다.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오던 어미 제비는 이제 둥지 바깥으로 꽁무니를 내밀고 똥을 쌌다. 툭! 만화책이나 동화책에서 본 웃기는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쓰는 내 공책에 떨어졌다. 토방 끄트머리는 피하는 게 상책인데, 만날 까먹는 나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제비똥 묻은 공책에 차곡차곡 쟁인 문장들 덕분에 나는 글을 좀 쓰는 아이로 통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한테 연애편지 대필 청탁을 받았다. 나는 ‘오빠들’의 가슴에 간질간질하게 닿는 편지보다는 ‘으하하하’ 웃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당연히 컵라면이나 떡볶이 1인분에 내 글을 팔던 시대는 금방 막을 내렸다.
첫 책 <우리, 독립청춘>을 출간한 건 마흔 살이 한참 넘어서였다. 그때도 나는 작가들이 쓴 책에 밑줄을 긋고 무언가 덧대고 되새기며 기대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어느 한때는‘글을 쓸 수 있으니까 불행의 밑바닥에서도 뼛속까지는 불행하지 않았다’고 한 <박완서의 말>이라는 책에 의지했다.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 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나도 마침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작정 모욕부터 준 그 사람들을 내 글의 등장인물로 삼고 싶었다. 쫄딱 망하게 하고, 너무너무 외롭게 만들 작정이었다. 노트북을 들고 나가 동네 카페에서 글을 썼다. 그런데 나는 박완서 작가 같은 대작가가 아니었다. ‘통쾌하게 되갚아 줄 거다’라는 마음으로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쓰는 나부터 웃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것은 동화였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장르였다. 한푼 두푼 알뜰하게 모으는 아이처럼 그날그날의 원고 작업량을 기록했다. 20여일 만에 단편 동화 세 편을 썼다. 아무 것도 되지 못한 글이지만 내 자매를 비롯한 친구들은 기꺼이 읽어주었다. 재미있다고 해준 말에 용기가 생겨서 한 출판사에 투고했다.
“글이 참신하고 재미있네요. 그런데 우리 출판사는 저학년 동화를 많이 안 펴내요. 창비 같은 큰 출판사에 보내보세요.”
원고를 읽은 출판사의 편집장님은 전화로 알려줬다. 창비라니.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창비 전집을 팔러 다니는 ‘창비 아저씨’가 있었다. 나도 24개월 할부로 책을 샀다. 1년에 한 번 꼴로 자취방을 옮겨 다니면서도 대문호들의 작품이 실린 창비 전집을 애지중지 모시고 다녔다. 그런 대단한 출판사에 처음 쓴 동화를 보내도 될까?
창비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메일의‘수신함’을 지켜보고 있지도 않았다. 초조해 할수록 노안이 빨리 오고 심신이 약해질 것 같아서 잊고 지냈다. 정확히 2주 뒤인 1월 18일 금요일 오후, 창비 어린이출판부 책임편집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표제작은 모두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른 두 편은 조금 아쉽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아이들이 능동적이거나 갈등 상황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또 가정 위주로만 벌어지는 일이니까 학교 얘기가 들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작품을 새로 쓰시면, 다시 한 번 보내주시라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아, <유혹하는 글쓰기>를 자주 읽은 게 탈이었다. 월세 90달러짜리 집에 살던 스티븐 킹은 <캐리>의 판권이 40만 달러에 팔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감격의 순간을 함께 나눌 아내와 아기들은 처가에 있어서 스티븐 킹의 가슴은 더 터질 것 같았다. 출판하자는 전화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스티븐 킹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새로운 이야기는 바로 쓰지 못했다.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봄꽃이 차례대로 피고지고 공기가 습습해질 때야 주인공 아이랑 잘 어울리는 짝꿍이 떠올랐다. 반마다 있게 마련인 ‘귀여운 빌런’도 튀어나왔다. 다른 반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선생님까지 등장시켰더니 신통하게도 이야기는 나아갔다. 어떻게 끝날지, 나도 궁금했다.
기차가 급브레이크를 길게 밟는 것처럼 매미 울음소리가 거슬리던 지난해 7월 23일. 나는 창비 어린이편집부 책임편집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방으로 들어가서 창문을 꽁꽁 닫았다. 꺄아! 계약하잖다. 2020년 6월에 출간할 거라는 계획까지 들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출판사는 내가 쓴 원고의 출간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1월 23일에는 1교 교정지를 우편으로 보내줬다. 이메일로 교정지를 주고받는 것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편집자님은 연필로, 때로는 볼펜으로 교정지 곳곳에다가 내 의견을 물어봐 주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제목이 자주 언급되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낡은 느낌이 들 수 있어서 덜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학년 대상의 동화이다 보니 할아버지가 사투리를 쓰는 게 조금 우려 됩니다. 표준어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사투리를 너무 낯설게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살펴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교정 작업을 하면서 동화 쓰기를 배운 셈이었다. 취재한 사례들을 이야기에 구체적으로 녹이는 게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주인공의 짝꿍은 독감에 걸렸다. 독감 약을 먹으면 자다가 초인종 벨 소리 같은 환청을 듣는 경우가 있다.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그대로 쓰면, 어린이들이 약 먹는 걸 두려워할 수도 있는 거였다.
3교는 크로스 교정이었다. 다른 편집자가 담당 편집자 눈에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던 교열 등을 새로운 눈으로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동화집에 실릴 첫 번째 이야기(손톱이 빠진 날)와 두 번째 이야기(내 꿈은 조퇴)사이에 ‘손톱’을 넣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이때 나왔다.
덕분에 첫 번째 이야기에서 손톱이 빠진 아이는 3학년 올라갈 때 손톱이 초승달만큼 자랐고, 리코더를 부는 게 힘들어서 독감에 걸리고 싶어 하고, 독감 검사의 실체를 알고는 건강해지려고 하는 두 번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군산에서 한 달 살기 하고 <여행기 아니고 생활기예요>를 쓴 서울시민 권나윤 작가는 내가 처음으로 쓴 동화집의 실물을 보지 않고서도 호언장담했다. 나를 ‘초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단다. 컴퓨터도 잘하고, 강의도 잘하고, PPT도 잘 만들고, 무엇보다 무척 웃기는 사람이라서 완전히 믿었다.
6월 23일 화요일에 군산 한길문고에 입고된 <내 꿈은 조퇴>. 책은 8시간 만에 싹 팔리고 한 권만 남았다. 한길문고는 총 261권을 입고했고, 2주일 동안 171권이 팔렸다
6월 23일 화요일, 동화집 <내 꿈은 조퇴>는 군산 한길문고에 오자마자 베스트셀러 판매대에 탑처럼 쌓였다. 그날 권나윤 작가는 동화책 20권을 사겠다고 군산까지 왔다. 서울은 인터넷서점도 하루 만에 배송되고, 대형서점도 많을 텐데. 갑자기 똑똑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계획을 믿어도 되나 의심스러웠다.
권나윤 작가가 사간 책은 부산, 울산, 포항, 서울의 초등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책을 읽은 아이들은 일기를 쓰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랑 나누고, 인증사진을 찍어 보냈다. 다들 작가가 책에 편지(사인) 해줬다면서 좋아했다. 자기 이름이 쓰인 사인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쓰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포항에서, 서울에서 “바쁘시겠지만, 사인본 10권만 보내주세요”라는 주문이 한길문고로 들어왔다. 내 취미는 사인이다. 하루에 50권은 거뜬하다. 책이 입고된 첫날에는 그렇게 많이 했는데, 요새는 하루에 10권 이하로 사인하고 있다.
<내 꿈은 조퇴>는 2주 동안 한길문고에서 171권 팔렸다. ‘한길문고 7월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 읽는 데 30분밖에 안 걸린다. 노안이 왔거나 책을 펴고 글자를 보면 바로 깊은 잠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림만 봐도 된다. 내 입으로 ‘책 좀 사달라’고 말하는 게 민망해서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100자평을 가져와본다.
“분명 소리가 날 리 없는 종이 책인데 왁자지껄해요. 주인공 캐릭터와 그림이 잘 어울려 생동감 있고 편집이 너무나 예뻐요. 억지로 끼워 맞춘 교훈이 없는 유쾌한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