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고등학교 강연
아직도 자립은 멀다. 어디 나가려면 최소 두세 사람의 손을 탄다. 컴맹이라서 강연 자료는 강동지가 만들어준 걸로 쓴다. 얼굴 화장은 동생 지현이 해준다. 똥멍청이처럼 옷 입는 자매를 둔 지현은 우리 집에 따라와서 코디를 해준다. 그전에 미용실도 다녀와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삶’에 대해 얘기하러 군산고등학교에 갔다. 제규가 1지망으로 썼다가 떨어진 학교. 3지망으로 쓴 동고등학교에 배정받은 제규. 야자 때문에 자기 인생은 망했다고 털썩 주저앉았지. 꽃차남은 형형 인생은 끝났다고 환호성을 질렀더랬다. 그게 벌써 3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나이는 공짜로 먹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는 들어가기 전부터 괜히 두근대고 어깨가 펴지지 않던 교무실. 나는 군산고등학교 교무실 앞에서 서성이지 않았다. 그냥 들어갔다. 교무실은 생각보다 더 아늑했다.
지난 9월에 만난 적 있는 임경순 선생님을 만났다. 1학년과 2학년 40명, 진로에 관심 가진 학생들을 조직하고, <소년의 레시피>를 싹 읽게 해준 선생님은 웃는 얼굴이 환하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작가가 서울에 살지 않고, 군산에 산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인사를 하니까 <소년의 레시피>를 읽은 한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다. 나도 신기하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됐다.
차 한 잔을 마시고, 강의를 할 도서관에 갔다. 남학생들은 특유의 환호와 박수가 있다. ‘우정의 무대’에 나오는 군인들 같은 함성을 질러준다. 영혼은 싣지 않고서도 “예뻐요”라는 말을 할 줄 안다. 시작부터 힘차다.
오후 2시 반. 엄청 재미있는 과목, 엄청 잘생긴 선생님이 들어와도 잠이 올 시간. 나는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질문을 했다.
“오늘 점심 메뉴 뭐였어요?”
“돈가스요! 돈가스!”
한 사람당 세 장씩 나왔다는 돈가스. 내가 감히 돈가스를 이길 수 있을까. 기분 좋게 먹은 뒤에 밀려오는 졸음은 절대 못 이긴다. 낙담한 내 표정을 스캔한 학생 몇 명이 부연 설명을 했다. 작은 거 세 장이었다고, 딱딱해서 맛도 없었다고. 그러나 소년들에게 고기는 진리. 튀김옷까지 입은 고기가 맛없을 리 없잖아.
뒤쪽에 앉은 학생들은 돈가스에 쉽게 공략 당하는 듯 했다. 너도 나도 많이 겪은 그 증상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입이 벌어지고, 머리는 360도 회전이 가능해지는. 화들짝 놀라서 똑바로 고쳐 앉았는데도 사람 말소리가 앵앵 거리면서 안 들리는 그 증상.
내가 하는 아이 컨텍은 맨 앞과 중간에 앉은 학생들한테는 통했다. 웃음도 딱 거기까지만 터지고, 이런 저런 대답도 딱 거기까지에서 들렸다. 그것으로도 완전 고마웠다.
강연 끝나고 단체 사진 찍고 바로 사인 시간. 학생들은 보들보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름만 써주라고, 성이랑 같이 쓰면 너무 정 없어 보인다고. 아, 그렇구나. 나는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르는 게 좋은데, 젊고 가능성 많은 학생들 말이 더 옳겠지. 재깍 그 말을 따랐다.
어떤 학생은 나보고 작가의 가치관을 영어로 써주라고 했다. 잔머리 굴린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영어로는 못 쓴다고. ‘00님, 등 근육을 키우세요’라고도 썼다. 그런 사인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는.
다 돌아가고, 소년 한 명만 남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님은 반대해요”라고 말문을 연 소년의 질문은 세 가지였다. 공부를 잘 한다는 그 소년에게 제규한테처럼 “하고 싶으면 해 봐”라고 말해도 될까?
20분 대화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따고 카톡 등록을 했다.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영화 목록을 소년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질문은 언제든지, 대답은 24시간 안에 하기로.
10월 중순, 군산고등학교 도서관은 더웠다. 지현이 애써서 코디해준 재킷은 벗고 강의했다. 그것도 아깝고, 모처럼 화장한 것도 아깝고.
집에 와서 꽃차남한테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속에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뙇! 미화는 1도 안 된, 너무나도 정직한 사진. 그래서 셀카라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