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령. 공습이나 화재 등에 대비하기 위해 한 곳에 집중된 주민이나 물자, 시설물 등을 분산시키는 명령이다.
전쟁 때나 있을 법한 명령이 군산의료원에 내려진 날은 2월 23일이었다. 군산의료원을 비롯한 전국 43곳의 공공병원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라 단시일 안에 정부의 소개령을 이행해야 했다.
군산의료원은 가까운 병원의 병상을 확보해서 400여 명의 입원환자들을 이송시켰다. 6층, 7층, 8층 입원실은 침대 간격이 2미터 이상 떨어진 격리병실로 세팅하고, 간호사 120여 명을 배치했다.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해 오염구역, 준오염구역, 청결구역으로 구분하고, 환자들과 일반인이 만날 수 없게 동선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 이 모든 일을 닷새 만에 해냈다.
시민들은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코로나19 뉴스 때문에 더 동요했다. 군산의료원의 의료진들도 어린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사춘기 아이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 부모님이 있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출퇴근하는 일상을 내려놓았다. 혹시라도 식구들에게 감염시킬까 봐 의료원의 5층 병실을 간이숙소로 삼았다.
3월 1일, 군산의료원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왔다. 대구에 사는 그 환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일부러 전주까지 왔다.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대구에서는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 군산의료원에 입원했다. 스스로 운전하고 올 만큼 건강해 보였던 환자는 폐렴이 심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지켜봤다.
의료인들이라고 해도 감염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조금씩은 있었다. 첫날에는 젊은 간호사 몇 명이 눈물을 글썽였다. 완전하게 밀착된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니까 사우나를 하는 것처럼 흥건하게 땀이 났다. 자기가 내쉰 숨을 방호복 밖으로 원활하게 내보낼 수 없어서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었다. 병원은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방호복을 2시간 이상 입을 수 없도록 했다.
3월 12일과 13일. 코로나19 대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난 대구경북의 환자 60여 명이 군산의료원에 입원했다. 한 벌에 5만 원 이상 하는 방호복은 환자와 접촉하면 재사용할 수 없다. 의료진들은 근무 중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되도록 물도 마시지 않았다. 대구경북에 파견된 의료인들처럼 군산의료원 의료진들도 방호복 때문에 피부가 물러졌다. 이마와 코에는 테이프를 붙였다.
사실 군산은 수도권 밖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나온 곳이다. 지난 1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들어온 그 환자는 대형마트와 목욕탕, 식당가를 다녔다. 군산시와 의료진은 초비상 상태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확진환자가 다닌 모든 곳을 즉각 폐점하고 소독했다. 군산시는 확진자가 목욕탕에 있을 때 모르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까지 총 69명을 찾아내서 자가격리 시키고, 1:1 모니터링을 하고, 생필품을 골고루 공급했다.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군산시의 유치원, 학교, 도서관, 박물관, 예술의전당 등은 문을 닫았다.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은 연기하거나 하지 않았다.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조를 요청하는 군산시를 믿고서 시민들은 모임을 자제하고 참을성 있게 집안에서 머물렀다. 학원들도 손해를 각오하고 2주간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군산시보건소는 이 작은 도시의 가장 번화가에 있다. 기침을 하거나 열이 있는 사람들은 선별진료소로 간다. 마스크를 쓰고 현장을 지나는 시민들은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을 보고 긴장했다. 마음속으로 다들 의료진을 응원했다. 32년째 ‘발렌타인 피자’를 운영하는 오인성씨는 행동했다. 피자 15판을 구워서 보건소 의료진들에게 주고 왔다.
마스크 낀 사람들 사이로 미담은 빠르게 퍼졌다. ‘점보짬뽕’에서는 탕수육을, 나운동 ‘가마꿉’에서는 치킨 수십 마리를 튀겨서 보건소 의료진들에게 보냈다. ‘군산스토리’ 대표 남상천씨는 간식응원 동선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는 여름마다 시민들과 함께 ‘군산우물’을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택배기사, 폐지 줍는 어르신, 걸어 다니는 학생들은 군산 시내 약 40여 곳에서 눈치 안 보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페이스북에 영상을 올리니까 간식응원을 하겠다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쑥스럽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저보고 배달하래요. 그래서 오후 3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는 배달 기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의료원으로 지정배달 해주라는 부탁을 받은 거예요. 사실 의료원은 확진환자들이 있으니까 저도 좀 무섭게 생각했거든요.”
남상천씨는 의료원에서 이현주 보건의료노조 군산의료원지부장과 마주쳤다. “염려하지 마세요. 확진환자들과 시민들은 어떤 경로로도 만날 수 없어요”라고 안심시킨 이현주 지부장은 굶고 있는 자식을 둔 어머니처럼 간식을 보고 기뻐했다. 의료원에서 숙식을 하는 120여 명의 의료진들은 환자들과 똑같이 1회용 도시락을 먹는다. 균형 잡힌 식사지만,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마카롱과 커피를 먹고 싶은 건 그걸 누릴 수 있었던 일상이 그립다는 뜻이다.
의료원에서 돌아온 남상천씨는 코로나19의 최전선이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구, 이탈리아 전역, 뉴욕처럼 군산의료원의 의료진들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집에 있는 아기들을 영상통화로만 보는 젊은 의료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페이스북에 올릴 영상을 만들었다.
선한 마음은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밥 때가 되어도 식당에 손님들이 오지 않고, 카페에 오던 단골이 발길을 끊고, 월세 걱정하면서 체육관과 학원을 닫고, 개학을 못한 학생들이 서점에 신학기 문제집을 사러 오지 않아도, 시민들은 생각했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알았다. 정부의 지침을 믿고 따르면서 고마움을 열렬하게 표현했다.
직접 싼 김밥 100줄, 딸기 라떼, 식혜, 사과즙, 마스크, 샌드위치, 붕어빵, 간장게장, 짬뽕 밥, 손 소독제, 물 티슈, 홍삼, 빵, 마스크, 오렌지, 견과류. 치킨, 피자, 마카롱, 죽, 갈아입을 면티 등이 군산의료원으로 보내졌다. 초등학생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쓴 편지는 의료원 식당 1층에 붙었다. 그 누구도 타지에서 온 코로나19 확진환자까지 받느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환자들처럼 병동의 병실에서 생활하는 의료진들은 예쁘고 달콤한 간식을 먹으면서 보내준 시민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일한 덕분에 땀을 많이 흘려서 저절로 다이어트까지 한 의료진들은 “시민들의 응원 덕분에 도로 살이 쪘다”고 사랑스러운 불평을 했다.
군산의료원은 코로나19에 대비한 전염병 전담병원이다. 일반 환자의 입원은 받지 않는 2차 선별진료소다. 군산의 병원들이 단순 감기 환자인 줄 알고 치료했는데 코로나19로 나오면 그 병원은 폐쇄되고, 의료인은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군산의료원은 의료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열이 나거나 목 아픈 환자를 응급실 간호사 18명과 응급구조사 5명이 담당하고 있다. 외부 선별진료소는 수술실 간호사 12명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정상 진료하는 외래 의료진과 접수창구, 원무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시민들이 보내준 간식과 물품을 보면서 책임감을 더 가진다고 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군산 미군기지의 군인들은 한국의 의료를 신뢰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 미국에 다녀온 군산시민은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고 바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서 군산의료원에 입원했다. 이 소식들을 알려준 이현주 지부장은 말했다.
“군산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돈 되는 입원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켰어요. 다른 나라는 코로나 19 환자들의 자기부담 치료비가 수천만 원이에요.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공공성 확보를 해서 자기부담을 줄였어요. 우리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건 국가의 몫이니까요.
그래도 우리나라 공공의료 병상이 전체 10%밖에 안 돼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200% 이상 해야죠. 우리 의료원에서도 대구로 간호사를 2주마다 5명씩 파견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우리 지역에 공공의료기관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의료진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완치하고 돌아가는 대구시민들은 의료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의료진들은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협조해주는 군산시와 시민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군산시장은 4개월간 급여 30%를 반납했고, 공무원들은 7000여만 원을 모금했음).
이 작은 도시에 공공병원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뭐라도 보탬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한 대학생이 군산의료원에 보낸 편지를 덧붙인다.
안녕하세요, 군산시민입니다.
군산의료원에 대구, 경북지역 환우분들이 입원하셨다고 들어서 정말 작은 마음이지만 노력하시는 분들께 응원이 될까 싶어 간단하게 준비했습니다.
약소하고 너무나 작지만 휴식시간에 수분보충 하시면서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이다 보니 마음에 비해 작은 물품밖에 준비를 못했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커피와 이온음료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마스크랑 소독물품 두고 갑니다. 저보다 더 필요하신 분들께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