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상태로 회장님

by 배지영


강썬님은 일주일에 두 번 꼴로 학교에 간다. 숙제 안 해서 등교 못 하겠다고 버티는 날도 있다. 강썬님을 못 이기는 나는 할 수 없이 교실로 전화를 한다. “아침에 깨웠더니 열이 좀 있네요.” 그 거짓말을 몹시, 자주, 번번이 한 건 아니다.


지난 목요일, 숙제가 없는데도 학교 가기 싫다고 오만상을 쓴 강썬님이 ‘학급반장’이 되어서 돌아왔다. <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를 읽어드릴 때 분명히 자기는 ‘사이드’가 좋다고 했는데. 왜 주목받는 ‘센터’ 자리로 간 걸까?

그날의 6학년 3반 교실 반장 선거 모습을 재구성하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도 강썬님이 던져준 퍼즐을 맞추면 이렇다. 반장 후보는 9명이었다. 강썬님은 우리 윗집 사는 서시후님이 추천했다. 반장 연설문을 준비해 온 어린이들도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후보가 된 강썬님은 별 말 안 했다는데 가장 많은 표를 얻고 말았다.

오, 예! 강썬님이 반장이 되다니.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등교 시간 임박해서 숙제 안 한 강썬님이 결석한다고 버티면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사람은 나다. “열이 좀 있네요. 오늘 쉴게요”라는 거짓말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세상 즐거웠다.

하지만 강썬님은 반장의 무게를 견딜 마음이 없는 사람. 벌써 냈어야 할 설문지를 뒤늦게 체크했다. 속마음을 조금 감추면 누가 잡아가나? 풀파워로 솔직하게 썼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를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자주 있습니까?

예.

언제?

거의 날마다

왜?

졸려서



** 오늘 임명장을 받아왔는데, 반장 아니고 회장입니다. 언제는 사이드가 편하고 좋다더니, 강썬님도 은근 야망가였네요.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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